"빨리 비켜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고요하던 아침의 적막을 깼다.

순간 출입구 근처를 지나가던 직원들이 멈칫한다.

법원 경위들의 기세에 모두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군에서나 볼 수 있는 '동작그만'자세다.

몸을 피할 곳을 못 찾아 허둥대는 직원들도 보인다.

이어 검정색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나릿님'들이 활짝 열어놓은 슬라이딩 도어를 통해 들어온다.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해 이들의 뒷모습이 보이면 그제서야 직원들은 멈춘 걸음을 재촉한다.

기자 역시 무심코 지나다 경위로부터 여러 번 주의를 받았다.

요즘은 '알아서' 잽싸게 움직인다.

매일 오전 9시를 전후해 대법원 정문 쪽 현관에서 반복되는 아침 풍경이다.

'나릿님'들은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해 대법관과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들."대법원장님께서 3부요인인 것은 아시죠?" 경위의 상황설명은 단순명료했다.

그의 민첩함이나 상관에 대한 깍듯한 예우를 탓하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사법부의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더더욱 없다.

법원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수장으로 바뀐 이후 법원 문턱을 낮추느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8일에는 법의 날을 기념해 대법원 '오픈하우스' 행사를 열어 서울 후암초등학교 학생 120명을 초청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일반인들이 여전히 법원을 어려워하고 때로는 미덥지 못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왜일까.

법원 아침행사는 사소한 일이지만 이런 유쾌하지 못한 경험들이 하나둘 쌓이다보면 섭섭하고 주눅든 마음이 '미움'으로 발전할 수 있다.

판사에 대한 '석궁테러'를 교수 한 명이 저지른 우발적인 사고로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이유다.

요즘 법조계의 무게 중심이 부쩍 검찰에서 법원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내년부터 배심제가 도입되고,구술변론과 공판중심으로 재판이 진행되면 '법원중심'구도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럴 때일수록 이용훈 대법원장이 강조하는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을 섬기다 보면 법원의 권위는 스스로 세워진다.

굳이 '아침행사'를 통해 억지로 세울 필요도 없다.

김병일 사회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