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서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력과 시력이 떨어져 주의력과 판단력이 시원찮고 신체반응이 느려진다.

새로운 지식을 얻기는커녕 기억의 무게를 감당하기도 힘들다.

갈수록 지인들은 멀어지고 말 상대를 찾기도 여의치 않다.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는 얘기 역시 호강하는 사람들의 넋두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유명한 문장가들도 늙는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는지 자탄하는 표현들이 많다.

"살아 있다는 게 창피해.이 쭈그러진 그림자는 얼떨떨해 등을 굽히고 바람벽 타고 간다.

인사하는 이 하나 없나니 얄궂은 팔자여."(보들레르) "늙은이는 하나의 하찮은 물건."(예이츠) "시인이나 웅변가나 성인이 뭐라고 하여도 노인은 노인이다."(롱펠로)

노인이 이처럼 하찮은 존재인가.

그들은 풍부한 지식은 없다 해도 농축된 경험이 있고,비록 동적(動的)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분명한 관점이 있다.

젊은이들에게 건네줄 충고를 갖고 있는가 하면,어떤 행동을 해도 일정한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노인들에게는 오직 과거만 있다고 하지만 미래를 투시하는 혜안도 갖고 있는 것이다.

"노인을 모신 가정은 길조(吉兆)가 있다"든지 "집에 노인이 안 계시면 빌어서라도 모셔라"는 격언들이 그저 대접 차원에서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노인을 모시는 것을 큰 미덕으로 여겼다.

"나라 상감님도 늙은이 대접은 한다"며 노인 공경에 예외를 두지 않았다.

노인인구가 급증하면서 이들을 안전하게 모시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그 중 하나가 스쿨존처럼 '실버존(Silver-Zone)'을 설치하는 것이다.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지난 주부터 시행에 들어간 실버존 제도는 앞으로 교통사고의 보호막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중 노인의 비중이 OECD국가 중 최고라고 한다.

중국의 사상가 임어당이 말한 '인생의 교향곡'이 교통사고라는 비극으로 끝나서는 안될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