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정체됐던 설비투자가 빠르게 회복될 것인가.

설비투자가 지난 1분기에 11.2%나 증가하는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저(低)설비투자 탈출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설비투자 증가세는 외환위기 이후 정체됐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추세를 보이고 있다.

김동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설비투자가 최근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로 진입한 것 같다"며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1분기보다는 설비투자 증가 속도가 앞으로 둔화될 가능성은 있지만 회복세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기계류 설비투자 급증

올해 1분기 설비투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1만원 신권발행에 따른 ATM(현금자동입출금기) 교체 수요가 있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특수산업용 기계와 반도체 장비,사무용 기기 등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기계류 설비투자는 올 1분기 15.0% 증가(전년 동기 대비)해 가파른 상승세를 주도했다.

정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설비투자가 예상을 넘어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며 "작년에 수출이 잘 되면서 제조업 투자가 늘어났는데,올해 들어서도 정보기술(IT)과 반도체 투자가 계속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같은 설비투자 호조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중 성장률이 낮았다가 하반기에 상승할 것이라는 '상저하고(上低下高)'의 경기전망에서 벗어나 상반기와 하반기 성장률이 비슷하게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꽤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선순환 기대

설비투자가 늘어나면 기계 등을 만드는 공장의 일감이 늘어나고,이로 인해 소득이 증가한 기업과 개인들의 소비가 증가하고,생산과 판매가 활발해지는 선순환 구조로 들어갈 수 있다.

설비투자가 늘어나면 생산능력이 그만큼 확대되기 때문에 수출 등을 늘리며 경제규모를 빠른 속도로 키울 수 있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경제성장은 설비투자가 상당부분을 주도해왔다.

1970년대 설비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19.6%,1980년대 증가율은 11.4%였고 1990년부터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까지 증가율도 7.8%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돈을 쓰지 않아 설비투자 증가세가 큰 폭으로 둔화됐다.

IT 거품이 터진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설비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1.1%에 그칠 정도로 정체 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 1분기에도 설비투자가 크게 늘어나자 일부 연구기관들은 '추세적인 전환'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KDI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부채를 줄이는 과정에서 설비투자를 최소화하는 소극적인 경영을 해왔는데,최근 들어 외환위기의 후유증을 극복하면서 설비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는 단계로 진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추세적인가? 일시적인가?

설비투자 증가가 추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분석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설비투자 증가가 일시적이며 경기 회복의 신호가 아닐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들이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식의 효율 경영에 한계가 발생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향후 경기에 대한 전망을 밝게 보고 공격적으로 대비하려는 전략에 따라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다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수준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렇다면 설비투자 증가는 '반짝 효과'에 그칠 수도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 이후 설비 투자를 늘리지 않아 나타나고 있는 반사 효과"라며 앞으로 설비 투자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판단하는 데는 아직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