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9월 열릴 예정이었던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가 사라졌다. 경기도 고양시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2회째 개최했던 이 행사는 어린이를 위한 영화활성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렸으나 주민들의 호응이 없는데다 관람객들의 흥미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고양시 의회는 올해부터 예산지원을 중단했다. 1996년 출발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최고영화제로 자리매김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철저한 사전 타당성 검토 없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후발주자로 나서면서 빚어진 결과다.

부산국제영화제 박준표 홍보담당은 "부산국제영화제 성공 이후 전국에 20여 개나 영화제가 생겨났다"며 "그러나 전문가 위주로만 운영하거나 시민후원,조직의 효율성 등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 대부분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업계 한 관계자는 "부실한 축제가 잇따라 양산되고 있는 것은 축제의 목적을 지역인지도 제고보다는 자치단체장들이 행사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등 차기 선거를 노린 선심행정에 두고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공한 축제 베끼기는 영화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올해 축제기간에도 이순신 장군,도자기,쌀,인삼 등 비슷한 소재를 갖고 각종 축제가 열리고 있다. 전어 버섯 철쭉 등과 관련된 축제들도 앞다퉈 개최된다.

지방축제의 문제점은 감사원 감사에서도 지적됐다. 1176개의 축제 가운데 76%인 890개가 1995년 민선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신설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성공작은 10%도 안된다는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우석봉 부산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축제 베끼기가 성행해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자칫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있는 국제행사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지역축제의 국제경쟁력도 떨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쏟아지는 유사 축제=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축제는 9개나 된다. 충남 아산에서는 해마다 4월에 탄신일을 기념하는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가 열린다. 경남의 경우 통영은 한산대첩축제,고성 당항포대첩축제,거제 옥포대첩기념대전,남해 노량해전승첩제,진해는 군항제를 각각 개최한다. 전남은 여수가 진남제 거북선 축제를,해남은 명랑대첩축제를 연다. 서울 중구는 명보극장 부지가 충무공 생가 터라는 이유로 충무공 축제를 열고 있다.

쌀 행사도 마찬가지다. 봉계황우쌀축제(울산),이천쌀문화축제(경기),토고미오리쌀축제(화천),청원생명쌀축제,생거진천쌀축제,당진 쌀사랑음식축제 등을 비롯해 전국에 10여 개나 된다.

인삼축제도 개성인삼축제(포천),금산인삼축제 등 5곳에 이르고 도자기행사도 이천도자기축제,계룡산분청사기축제,강진청자문화제,분청도자기축제 등 유명한 것이 4개나 된다.

해맞이축제는 무려 20여 곳을 넘어서고 있고 가을철 전어축제는 부산과 마산,보령,장흥 등 전어가 잡히는 곳에서 대부분 열고 있다.


◆지방축제도 구조조정 중=동네잔치로 전락하는 지역축제가 속출하면서 지자체들도 축제 구조조정에 본격 나섰다.

여수시는 지역축제 가운데 경쟁력에서 뒤지는 덕양곱창축제를 올해부터 폐지했다. 대신 8개 축제를 동백꽃축제,생선요리향토음식축제,돌산갓김치축제,영취산 진달래축제,일출제 등을 5개로 통폐합했다. 경남도는 100여 개 축제 중 시ㆍ군별로 대표축제 1개씩을 육성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축제조직위원회와 대학을 연계한 축제평가단을 만들어 70여 개 축제 통폐합을 추진 중이다. 김해시는 올해부터 가락문화제와 가야세계문화축제를 가야문화축제(4월29일~5월6일)로 통합했다.

이학겸 김해시 문화예술과 계장은 "두 행사가 중복돼 2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기대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으나,이번 통합으로 예산도 15억원으로 줄였고 주민들의 참여로 독창적인 행사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오순환 한국문화관광연구소장은 "화천 산천어축제가 성공을 하니까 인근에서 열목어축제 송어축제 등 유사한 축제를 추진 중"이라며 "지역문화를 독특한 축제로 창조하려는 노력없이 베끼기 전략으로 일관할 경우 3류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