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 '新에버그린' 전략으로 특허보호막

약제비적정화 이후 오리지널약 가격인하 대응

다국적 제약사들이 약제비 적정화방안 시행 후 기존과 다른 유형의 특허권 방어전략 '에버그린'을 구사하고 나서 국내 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다.

약제비 적정화방안에 따르면 복제의약품이 건강보험 등재를 하면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은 자동으로 20%가 인하된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최근 이러한 가격 인하를 저지하기 위해 국내 제약사들이 복제의약품을 출시하기 전단계에 선제적으로 특허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는 것.이는 국내 제약사들이 복제의약품을 시장에 출시한 이후 특허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하던 기존의 다국적 제약사들의 에버그린 전략과는 다른 것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9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미국계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는 최근 안국약품 보령제약 등 9개 국내 제약사를 상대로 특허침해 금지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9개 제약사가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보험약가를 획득한 복제의약품이 자사의 요실금 치료제 '디트루시톨SR탭슐(성분명 톨터로딘)'의 제형특허(약효가 서서히 나타나도록 물질 구조를 설계한 특허)를 침해했다는 게 화이자 측의 주장이다.

일본계 다국적 제약사 에자이도 자사의 치매치료제 '아리셉트정(성분명 염산도네페질)'의 복제의약품을 만든 국내 9개 제약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착수했다.

에자이는 이들 제약사에 경고장을 발송했으며,이중 동화약품에는 최근 특허침해예방 가처분 소송도 제기했다.

이 회사는 가처분 신청과는 별도로 지난 4월에는 동화약품을 상대로 특허심판원에 적극적 권리확인 심판도 제기하는 등 전방위 공세를 취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특허 소송 제기 시점이 국내 제약사들이 복제의약품을 시장에 출시하기도 전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변리사는 "약제비 적정화방안 시행으로 보험약가를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오리지널 제품의 가격이 인하돼 명확한 손실을 입증할 수 있다는 판단을 다국적 제약사들이 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국내 제약사 입장에서는 다국적 제약사의 이 같은 공세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국내제약사 관계자는 "복제약의 경우 시장 선점이 중요하기 때문에 특허 만료 전에 제품허가와 보험약가를 받아놓는 게 관례였는데 앞으로는 특허소송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이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국적 제약사도 불만이 없지 않다.

한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특허만료여부와 무관하게 복제약에 대한 허가와 보험약가를 주는 현행 제도하에서 복제약이 보험약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오리지널 의약품의 보험약가를 인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제도 자체가 애초부터 잘못 설계돼 업체간의 소송을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