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경기 회복을 이끈 산업이 정보기술(IT)이었다면 최근에 보여지는 경기 회복의 징후들은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전통산업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굴뚝산업'으로 불리는 이들 업종의 수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관련 기업과 근로자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협력업체들의 투자와 생산활동이 활발해지는 전후방 파급효과로 국내 경기에 온기가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기의 선순환은 부품 수입의존도가 높은 IT업종이 주도하는 경기 회복 국면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반도체 컴퓨터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IT업종은 부품을 국내에서 조달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국내에 떨어지는 부가가치도 적다.

그러나 이번에 나타나는 경기 회복의 징후들은 전통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경기가 상승세로 진입할 경우 예전과는 다른 모습,즉 경기 상승 기간이 길어지고 경기 정점도 상당히 높아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통산업 파급효과 크다

조선과 자동차 일반기계 등 전통산업 제품은 국산화율이 평균 90%가 넘는다.

이 때문에 수출이 늘어나면 이들 기업뿐만 아니라 부품업체들도 호황을 누린다.

반면 IT제품은 프로젝션TV(52%)를 비롯해 MP3플레이어(64%) 휴대폰(69%)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82%) 등 대부분 제품의 국산화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부품업체 등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IT제품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32.0%에서 지난해 28.3%로 줄었다.

올해 1분기에 29.5%로 다소 높아지긴 했지만 IT업종이 성장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철강과 조선 기계류 등 비IT업종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예컨대 철강제품 수출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7% 늘어났고 선박(26.0%) 석유화학(22.8%) 일반기계(20.2%) 등도 20%가 넘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조원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 등을 검토해본 결과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설비 투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수출기업에 한정됐던 호경기 분위기가 협력업체 등 밑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산 부품을 많이 사용하고 외화가득률이 높은 전통산업이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중소기업도 함께 살아나는 '수출의 경기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호황다운 호황' 올까

1970년 이후 전통산업이 주도하던 경기 사이클의 확장기는 평균 31개월이었다.

하지만 IT산업이 주도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경기 상승 기간은 평균 11개월에 그쳤다.

경기가 좋아지는 것을 사람들이 체감하기도 전에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밑바닥 경기는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양극화의 간극도 좁혀지지 않았다.

통계청 관계자는 "2002년 12월을 경기 저점으로 선언한 뒤 지금까지 경기 사이클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이후 경기 진폭이 너무 작은 데다 상승과 하강의 기간도 짧았기 때문이다.

2003년 이후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갔는데도 경제성장률은 5% 이하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등 수출과 내수경기가 동떨어진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산업연관효과가 큰 업종이 수출 호황을 주도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소재 산업과 부품 업체 등 전후방 기업들의 설비 투자가 활발해지고,소득이 늘어난 근로자들이 소비를 늘리는 '호황다운 호황'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