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 발표한 英 블레어 총리… 10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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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풀어 경제 활력 유도 이라크戰 지원 나쁜 유산
최연소 노동당 당수,최연소 총리,노동당 역사상 최초로 3기 연속 집권을 이끈 지도자.영국 정치사에서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던 토니 블레어 총리가 10일 공식 사임 의사를 발표했다. 집권 3기의 임기 2년을 남겨놨지만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심한 데다 미국 추종 외교로 떨어진 지지율이 높아질 조짐이 없기 때문이다. 블레어는 6월 하순 노동당 특별전당대회에서 차기 총리가 될 당수가 선출되는 대로 총리실을 떠날 예정이다. 다음 총리는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으로 굳어져 있다.
블레어 집권 10년의 끝자락은 최근 지방선거에서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면서 노동당이 참패한 데서 볼 수 있듯 불명예로 장식됐지만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점에서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 당시 43세의 젊은 나이로 집권에 성공한 블레어 총리는 젊고 혁신적인 영국을 만들기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며 영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특히 적극적인 해외 투자 및 외국인 투자 유치,영국 중앙은행의 독립 등을 통해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냈다.
10년 연평균 성장률은 2.8%. 심각한 침체 한번 겪지 않았다. 전통적인 노동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언론은 '토리(Tory,보수당) 블레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블레어가 집권 기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은 영국 금융업의 부활이다.
번듯한 자동차 회사 하나 없는 제조업 빈국이 됐지만 금융 서비스 산업은 최강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런던은 뉴욕에 넘겨줬던 세계 최고의 금융 도시라는 위상을 되찾아왔다.
영국이 1992년 이후 58분기 연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금융 산업의 부흥과 이에 따른 부동산 호황 덕분이다.
블레어 총리는 서유럽 전역이 복지와 분배에 치중하고 있던 1990년대 후반 '제3의 길' '생산적 복지' 등을 내세우며 영국의 새로운 경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일부 현지 언론들은 "블레어 총리가 집권 초기에는 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머뭇거린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찰스 팔코너 영국 대법원장의 말을 인용,"블레어 총리는 공공 부문에서 많은 것을 이뤄냈지만 개혁 작업을 보다 빨리 추진하지 못한 것을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팔코너 대법원장은 "블레어 총리는 공공 부문 개혁이 시민 주도라는 문화적 변화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했다"며 "그래서 집권 뒤 3년을 낭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약간의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경제 정책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블레어 정권이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미국 주도 이라크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지나친 친미 정책을 폈던 것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영국은 자국민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 본토에 대한 테러 위협까지 가중됐다.
정치·외교 이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경제·사회적 성과를 완전히 덮어버리고 말았다. 블레어 자신도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이 밖에 수용 불가능한 수준까지 증가한 이민자 수와 세금 인상,공공자금 낭비,정치 스캔들 등도 블레어의 오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최연소 노동당 당수,최연소 총리,노동당 역사상 최초로 3기 연속 집권을 이끈 지도자.영국 정치사에서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던 토니 블레어 총리가 10일 공식 사임 의사를 발표했다. 집권 3기의 임기 2년을 남겨놨지만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심한 데다 미국 추종 외교로 떨어진 지지율이 높아질 조짐이 없기 때문이다. 블레어는 6월 하순 노동당 특별전당대회에서 차기 총리가 될 당수가 선출되는 대로 총리실을 떠날 예정이다. 다음 총리는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으로 굳어져 있다.
블레어 집권 10년의 끝자락은 최근 지방선거에서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면서 노동당이 참패한 데서 볼 수 있듯 불명예로 장식됐지만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점에서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 당시 43세의 젊은 나이로 집권에 성공한 블레어 총리는 젊고 혁신적인 영국을 만들기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며 영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특히 적극적인 해외 투자 및 외국인 투자 유치,영국 중앙은행의 독립 등을 통해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냈다.
10년 연평균 성장률은 2.8%. 심각한 침체 한번 겪지 않았다. 전통적인 노동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언론은 '토리(Tory,보수당) 블레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블레어가 집권 기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은 영국 금융업의 부활이다.
번듯한 자동차 회사 하나 없는 제조업 빈국이 됐지만 금융 서비스 산업은 최강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런던은 뉴욕에 넘겨줬던 세계 최고의 금융 도시라는 위상을 되찾아왔다.
영국이 1992년 이후 58분기 연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금융 산업의 부흥과 이에 따른 부동산 호황 덕분이다.
블레어 총리는 서유럽 전역이 복지와 분배에 치중하고 있던 1990년대 후반 '제3의 길' '생산적 복지' 등을 내세우며 영국의 새로운 경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일부 현지 언론들은 "블레어 총리가 집권 초기에는 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머뭇거린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찰스 팔코너 영국 대법원장의 말을 인용,"블레어 총리는 공공 부문에서 많은 것을 이뤄냈지만 개혁 작업을 보다 빨리 추진하지 못한 것을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팔코너 대법원장은 "블레어 총리는 공공 부문 개혁이 시민 주도라는 문화적 변화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했다"며 "그래서 집권 뒤 3년을 낭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약간의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경제 정책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블레어 정권이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미국 주도 이라크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지나친 친미 정책을 폈던 것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영국은 자국민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 본토에 대한 테러 위협까지 가중됐다.
정치·외교 이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경제·사회적 성과를 완전히 덮어버리고 말았다. 블레어 자신도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이 밖에 수용 불가능한 수준까지 증가한 이민자 수와 세금 인상,공공자금 낭비,정치 스캔들 등도 블레어의 오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