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濟民 < 연세대 교수·경제학 >

정부가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부가 의도한 바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은 교육·의료 등의 개방에 대해서 EU가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하는데 EU는 관심이 없다.

한국 정부가 교육·의료 같은 서비스산업에서 EU가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FTA를 통해 직접투자를 유치(誘致)해서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미 FTA도 마찬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관심이 없었다.

미국이 관심이 없으니 EU라도 관심이 있는가 하고 보았지만 EU도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EU가 왜 교육이나 의료에 대해 관심이 없는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앉아서 유학생 받고 환자 받는데 한국에 학교 세우고 병원 세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설령 FTA가 체결되더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더 이익이 되도록 보장하지 않는 한 FTA 체결만으로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지는 않는다.

교육과 의료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모든 산업에서 FTA가 자동적으로 그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이나 EU 같은 선진 지역과의 FTA는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한·미 FTA도 그렇다.

한·미 FTA의 협상 결과는 자동차와 섬유에서 얻고 의약품과 문화산업에서 잃었다는 것으로 요약(要約)할 수 있다.

자동차와 섬유는 한국이 미래에 먹고 살 새로운 산업이 아니다.

반면 제약산업은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산업이다.

영화나 방송 등 문화산업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한·미 FTA의 결과 제약산업이나 문화산업이 바로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도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

FTA의 보완책으로 제약산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대다수 제약업체가 카피약을 파는 현재의 위치에서 벗어나 연구·개발로 신약(新藥)을 만드는 능력을 먼저 키우게 한 뒤 FTA를 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영화나 방송에 있어서도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영세한 한국 기업의 경쟁력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다.

물론 국내외적 여건으로 교과서 식의 순서를 지키기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러나 FTA를 먼저 추진하고 그 '보상' 차원에서 미래에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식은 곤란하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보상이 아니라 FTA 추진으로 대표되는 '무역정책'과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을 육성하는 '산업정책'을 아우르는 종합적 전략이다.

그런 전략 없이 FTA를 체결(締結)하는 것만으로는 외국인 투자가 들어올 수도 없고 새 성장산업을 만들 수도 없는 것이다.

교육이나 의료는 무역정책이나 산업정책이라는 측면 위에 사회정책적 성격이 더해져서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산업정책과 무역정책,사회정책을 아우르는 종합적 전략이 필요한 분야다.

그런 종합적 전략 하에서 필요하다면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투자 유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적절한 유인과 투자 환경이다.

그런 것이 제공되지 않는 한 FTA를 체결하더라도 투자가 들어오려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FTA 협상에서 관심을 보일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한·미 FTA와 한·EU FTA의 협상이 시사(示唆)하는 바는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드는 작업은 한국 자체의 몫이라는 것이다.

FTA 추진도 그 작업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는 있지만,산업정책과 무역정책,사회정책을 아우르는 종합적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을 때에만 그렇게 될 수 있다.

한·미 FTA는 바로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추진과정에서 심한 갈등을 빚었다.

EU와의 FTA는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