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현정의 스타일 톡톡] 디자이너 이영희ㆍ이정우 '모녀의 수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거 체크 안 하고 뭐하고 있니?"
오는 15일 출국을 앞두고 디자이너 이영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 열릴 패션쇼 준비 때문이다.
워싱턴에 소재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연사박물관 내 한국관 개관을 기념해 한국 대표 디자이너로 초대된 데다 그녀의 한복 16벌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100년간 전시·보관되는 영예를 안았기에 수차례 치러온 패션쇼 준비지만 감회가 남다르다.
얼마 전 열렸던 서울 컬렉션 무대에서 아름다운 빛깔,고전과 현대가 조화된 드레스로 찬사를 받은 데 이어 워싱턴과 뉴욕 정기 컬렉션까지.이영희 한복은 이제 세계 무대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쇼윈도에 비치는 매력적인 쪽빛 튜브 드레스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난 압구정동에 위치한 메종 드 이영희의 문을 열었다.
#50대에 시작한 꿈
"누가 한복을 여기서…." 10여 년 전 한국에서 열심히 모은 재산을 털어 파리 패션쇼에 섰을 때 누군가 그녀에게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유럽 패션 피플의 지지와 찬사를 받고 돌아왔지만 국내에선 오히려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모함을 받았다.
한복이기 때문에 이유 없이 폄하하는 상황에서 디자이너 이영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일했다.
"딸한테 왜 말리지 않았냐고 물어봤다니까…."
"어머니와 한복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어요.
세계 최고니까요."
타지에서의 힘든 시간들을 느끼게 하는 디자이너 이영희의 푸념 아닌 푸념.당시로선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이영희의 파리 도전에 대해 같은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는 딸 이정우를 비롯한 모든 가족이 응원을 보냈다.
그러기에 그녀는 후회 없이,물러섬 없이 한결같은 코리안 스타일을 창조하고 디자인했다.
파리 진출에 이어 2004년 뉴욕 맨해튼에 문을 연 이영희 뮤지엄.오는 22일 열릴 패션쇼는 뉴욕 삼성익스피어리언스(맨해튼 타임워너 센터)에서 멋진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올 가을엔 35년 한복 인생을 담은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있는 디자이너 이영희.그러나 그녀가 아쉬워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일본의 이세이 미야케,유럽의 존 갈리아노 등과 같은 한국 대표급 디자이너의 부재가 그것.멋진 영감의 원천인 한복과 실력 있고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이너가 있음에도 불구,글로벌하게 펼쳐나갈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딸에게 쓰는 편지
세 시간 동안 끝없이 이어진 모녀의 수다.
"우리도 오랜만에 봤거든." 발레 공연을 보러 갔던 모녀가 이영희 한복을 입은 발레리나 문훈숙의 의상 컬러와 축하 꽃다발의 색을 맞추기 위해 일어났던 해프닝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꽃은 받는 사람에 따라, 기분과 장소에 따라 그리고 의상의 색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는 것.두 모녀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삶에 '패션'이라는 코드를 부여한다.
의상,화장,인테리어,꽃,장신구,음식….모든 대화의 주제는 '아름다움'으로 귀결된다.
디자이너 이정우는 어머니의 까탈스러운 감각과 타고난 재능을 이어받았다.
'나는 너를 믿는다'는 말에 전공도,꿈도 아니었고 남편과 시댁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따라 디자이너가 됐다.
브랜드 'Sa Fille'….그녀의 딸. 드라마틱한 옷들로 우리를 사로잡았던 이정우는 2003년 그만두었던 일을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엄마는 딸에게 힘든 길을 같이 가는 게 미안하고 딸은 엄마에게 힘들지만 고맙다고 말한다.
일주일에 2~3회 수영을 꾸준히 하고 집에 돌아와선 스트레칭과 훌라후프를 하는 디자이너 이영희는 20년 전과 다름없이 젊고 활기차다.
젊은 열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빨리 포기하는 것'.디자이너 이정우 역시 승마를 통해 건강과 탄력 있는 몸매를 유지한다.
더 히스토리 오브 후의 제품으로 피부 관리도 함께 하고 탐나는 액세서리나 옷에 대한 쇼핑 정보도 함께 공유하는 모녀.
한복을 '가장 입고 싶은 드레스'로 만든 디자이너 이영희.그녀가 세계 속에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길을 열어놨으니 이제 딸 이정우,그리고 우리가 그 꿈을 이루는 일만 남았다.
< 브레인파이 대표·스타일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