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시장경제] 세계경제 대세는 '개방ㆍ親시장 정책'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으로 '모던 타임즈'(The Modern times)라는 기계 문명·자본주의에 대한 상징적 풍자로 잘 알려진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 시대적 배경이다.
1936년에 발표된 이 영화에는 당시 미국사회의 빈곤과 실업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시기는 대공황의 그림자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덮고 있던 시기였다.
1929년 '검은 목요일'의 주식시장 붕괴와 함께 찾아온 대공황의 결과는 참담했다.
미국의 1933년 1인당 평균소득은 대공황이 시작된 1929년에 비해 30% 이상 감소했고,실업률은 25%에 달할 정도로 실직자가 폭증했다.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로 번진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붕괴는 전체주의자들의 집권으로 이어져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화는 평범한 사람들을 사회의 물적 기반으로부터 소외시켜 일상적으로 실직과 빈곤의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것이 영화에 나타난 채플린의 시각이다.
이는 대공황은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라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한 것이고,세계화된 자본주의는 대공황의 여파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채플린의 현대 산업화에 대한 시각과 대공황의 실제 원인은 양립할 수 있을까?
대공황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이나 시장의 실패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국가 간 자본이동과 무역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세계화가 후퇴한 것에 근원을 두고 있다.
게다가 세계화의 후퇴와 더불어 나타난 1920년대 초의 불황에 대응한 미국정부의 잘못된 통화정책이 촉발시킨 것이었다.
미국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1929년 중반까지 통화공급을 늘리다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통화량을 급속히 줄였다.
이에 주가하락을 예측한 투자자들의 투매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면서 대공황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대공황은 단순한 주기적 불황의 한 국면에 그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국가간 무역·자본이동을 통제하는 보호주의로의 경쟁적 전환,그리고 정부개입의 강화는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어렵게 만들어 불황을 장기간 지속시켰다.
즉,보호주의의 강화와 반시장적인 정책이 전쟁에 따른 세계화의 후퇴와 일관성 없는 통화정책으로 촉발된 불황을 장기간에 걸쳐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결국 '모던 타임즈'에 나타나는 실업·빈곤의 모습은 시장경제에 내재하는 본질적 모순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외부적 충격으로 인한 세계화의 후퇴와 시장의 원활한 작동에 적합하지 않은 반시장적 정책 및 제도의 조합으로 생겨난 것이다.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2차 세계화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설립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최근에는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확산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세계화의 특징은 세계화에 참여한 국가들이 20세기 초의 세계화에 비해 경제성장 및 빈곤감소라는 측면에서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세기 후반 세계화의 물결에 동참하여 경제적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국가이다.
최근 한·미 FTA의 체결은 시장의 확대 및 경제시스템의 선진화를 통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세계화의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진통상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다.
이런 기회가 도래했다는 것은 유럽연합·중국·일본 등 거대경제권이 앞을 다투어 우리와 FTA를 체결하려고 하는 것에서 실감할 수 있다.
반면 대공황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세계화의 후퇴와 시장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과 제도는 재앙이 될 것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반세계화운동과 국내의 FTA 및 도하개발어젠다(DDA) 반대운동은 세계화에 반대한다는 점,그리고 그 대안으로 사회적 연대를 통한 공공성의 강화 및 시장·교역에 대한 통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교훈을 무시한 퇴행적 운동이다.
그들이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시장기능의 통제에 따른 낮은 생산성으로 대다수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공동체일 뿐이다.
'모던 타임즈'의 마지막 장면은 희망을 찾아 떠나는 두 남녀의 힘겹지만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들이 향하는 곳이 개방되고 시장원리에 적합한 제도를 갖춘 사회라면,크고 세분화된 시장에서 보다 많은 선택의 기회를 얻을 것이고 영화 마지막 장면의 채플린처럼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채플린의 휴머니즘 가득한 눈빛을 사랑한다.
< 송원근 한경硏 연구위원 >
이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 시대적 배경이다.
1936년에 발표된 이 영화에는 당시 미국사회의 빈곤과 실업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시기는 대공황의 그림자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덮고 있던 시기였다.
1929년 '검은 목요일'의 주식시장 붕괴와 함께 찾아온 대공황의 결과는 참담했다.
미국의 1933년 1인당 평균소득은 대공황이 시작된 1929년에 비해 30% 이상 감소했고,실업률은 25%에 달할 정도로 실직자가 폭증했다.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로 번진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붕괴는 전체주의자들의 집권으로 이어져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화는 평범한 사람들을 사회의 물적 기반으로부터 소외시켜 일상적으로 실직과 빈곤의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것이 영화에 나타난 채플린의 시각이다.
이는 대공황은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라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한 것이고,세계화된 자본주의는 대공황의 여파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채플린의 현대 산업화에 대한 시각과 대공황의 실제 원인은 양립할 수 있을까?
대공황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이나 시장의 실패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국가 간 자본이동과 무역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세계화가 후퇴한 것에 근원을 두고 있다.
게다가 세계화의 후퇴와 더불어 나타난 1920년대 초의 불황에 대응한 미국정부의 잘못된 통화정책이 촉발시킨 것이었다.
미국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1929년 중반까지 통화공급을 늘리다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통화량을 급속히 줄였다.
이에 주가하락을 예측한 투자자들의 투매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면서 대공황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대공황은 단순한 주기적 불황의 한 국면에 그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국가간 무역·자본이동을 통제하는 보호주의로의 경쟁적 전환,그리고 정부개입의 강화는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어렵게 만들어 불황을 장기간 지속시켰다.
즉,보호주의의 강화와 반시장적인 정책이 전쟁에 따른 세계화의 후퇴와 일관성 없는 통화정책으로 촉발된 불황을 장기간에 걸쳐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결국 '모던 타임즈'에 나타나는 실업·빈곤의 모습은 시장경제에 내재하는 본질적 모순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외부적 충격으로 인한 세계화의 후퇴와 시장의 원활한 작동에 적합하지 않은 반시장적 정책 및 제도의 조합으로 생겨난 것이다.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2차 세계화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설립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최근에는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확산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세계화의 특징은 세계화에 참여한 국가들이 20세기 초의 세계화에 비해 경제성장 및 빈곤감소라는 측면에서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세기 후반 세계화의 물결에 동참하여 경제적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국가이다.
최근 한·미 FTA의 체결은 시장의 확대 및 경제시스템의 선진화를 통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세계화의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진통상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다.
이런 기회가 도래했다는 것은 유럽연합·중국·일본 등 거대경제권이 앞을 다투어 우리와 FTA를 체결하려고 하는 것에서 실감할 수 있다.
반면 대공황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세계화의 후퇴와 시장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과 제도는 재앙이 될 것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반세계화운동과 국내의 FTA 및 도하개발어젠다(DDA) 반대운동은 세계화에 반대한다는 점,그리고 그 대안으로 사회적 연대를 통한 공공성의 강화 및 시장·교역에 대한 통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교훈을 무시한 퇴행적 운동이다.
그들이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시장기능의 통제에 따른 낮은 생산성으로 대다수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공동체일 뿐이다.
'모던 타임즈'의 마지막 장면은 희망을 찾아 떠나는 두 남녀의 힘겹지만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들이 향하는 곳이 개방되고 시장원리에 적합한 제도를 갖춘 사회라면,크고 세분화된 시장에서 보다 많은 선택의 기회를 얻을 것이고 영화 마지막 장면의 채플린처럼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채플린의 휴머니즘 가득한 눈빛을 사랑한다.
< 송원근 한경硏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