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만에 인접한 중동 국가들이 석유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경제 글로벌화,인프라 투자 확대,인재 육성 등을 통한 새로운 국가 건설에 나서고 있다.

새로운 중동 국가 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 6개 산유국들 간 협력 기구인 걸프협력회의(GCC)가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풍부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GCC 회원국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들 국가와 경제 협력을 강화하려는 세계 각국의 '러브콜'도 쇄도하고 있다.

현재 인도 중국은 GCC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도 GCC와 FTA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각국들 GCC에 'FTA 러브콜'

EU 의장국인 독일의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은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장관급 회의에서 "GCC와 EU는 올 연말까지 FTA에 서명하길 바란다"며 "양측의 경제 교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FTA는 서로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지난 4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5개국을 방문,GCC와 연내 FTA 체결 방안을 논의했다.

이와 관련,셰이카 루브나 알 카시미 UAE 경제장관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GCC는 첫 번째 FTA를 일본과 맺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역 경제의 확대를 원하고 있는 GCC 국가들도 FTA 체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에는 UAE의 무하마드 총리가 인도의 수도 뉴델리를 방문,지난 1년여간 중단됐던 GCC-인도와의 FTA 협상을 이달 하순부터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GCC는 최근엔 중국과도 FTA 협상을 시작했다.

UAE의 경제부 차관의 발표에 따르면 양측은 상품 무역 자유화에 관한 교섭을 마치고 6월에는 서비스 무역 자유화를 포함한 협의를 시작한다.

양측 간 합의가 이뤄지면 중국은 잡화 건설 자재 등의 분야에서,GCC 측은 석유화학 분야에서 수출 증가가 예상된다.

GCC는 또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등을 계기로 한국과도 FTA 교섭을 추진,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 등의 중계무역 요충지로서 중동을 키워나간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GCC 6개국은 역내 총생산(6개국 GDP의 합계) 규모가 총 750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러시아의 경제 규모와 맞먹는다. 경상수지 흑자는 연간 2000억달러(GDP의 27% 규모) 정도이며,역내 금융 자산은 3조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오일 머니'로 대대적 인프라 투자

GCC 국가들이 이처럼 전 세계 각국으로부터 'FTA 러브콜'을 받으며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경제 기반을 탄탄히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GCC 회원국 가운데 하나인 카타르 정부는 올 봄부터 신국가 건설 프로젝트를 위해 외국 기업에 각종 사업을 발주하기 시작했다.

카타르 정부는 향후 25년간의 국가 정책들을 '전국종합개발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수도인 도하에는 신공항을 세우고,인접국 바레인에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수상다리도 건설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5개 유명 대학을 자국 내에 유치하는 교육 특구 신설 등을 포함한 도시 계획도 마련 중이다.

이들 중동 산유국들이 이같이 적극적으로 신국가 건설에 나설 수 있는 이유는 석유 수입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오일 머니' 때문이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는 장기적으로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석유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경제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탄탄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UAE 바레인 등 페르시아만 인접 국가들은 사회간접자본 정비를 위한 계획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의 중동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동에서 국방 분야를 제외한 대형 프로젝트 투자액(계약 기준)은 2005년 대비 15% 줄어든 1210억달러였다.

하지만 도로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분야만 따로 떼어내면 지난해 중동에서 성사된 투자액은 335억달러로 2005년의 2.2배로 증가했다.

그만큼 이들 국가들은 사회간접자본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은 또 세계 각국과 무역·투자를 늘리고 신흥시장 및 인접국과도 활발한 교류를 벌여 장기적으로는 중동을 세계 무역의 중심으로 만들어나가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다.

UAE 등 중동 국가들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주변국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일례로 쿠웨이트 투자청은 최근 터키의 대형 은행을 매수할 계획을 밝히고 있으며,쿠웨이트의 한 투자회사는 터키 기업과 합병해 이라크 북부에 하루 저장량 2만배럴이 넘는 저유소를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다양한 인재 육성 프로그램도 적극 추진

산유국들이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함께 가장 의욕을 보이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인재 육성이다.

중동 국가의 기업들은 과거와는 달리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원을 채용하고,국가적으로도 다양한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일례로 UAE 지역 정부 가운데 하나인 아부다비에 있는 일본인 학교 유치원에는 현재 3명의 아부다비 출신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이는 아부다비 정부가 만든 지도자 육성 프로젝트의 하나로,정부는 어린이 엘리트를 엄선해 일본인 학교와 같은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켜 외국어와 외국 문물을 습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중학교까지 일본인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고,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일본으로 직접 유학도 떠난다.

아부다비의 무하마드 왕자는 "이 같은 철저한 교육으로 외국 문화를 습득하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며 "외국 학교에서 규율과 문화를 배우는 것은 각계 지도자가 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지도자 양성을 위해 압둘라 국왕의 이름을 내세워 각종 교육 프로젝트도 실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월에는 총 예산 31억달러에 달하는 교육 발전 계획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009년까지 각종 엘리트 양성 학교를 세우고 새로운 왕립 대학도 신설할 예정이다.

◆세계 투자자들 GCC 금융 시장에도 눈독

GCC 금융 시장에 대한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뉴스위크는 GCC가 이처럼 집중된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이 지역 금융 시장이 글로벌 동조화에서 상대적으로 비켜나 있기 때문에 투자 위험 회피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과거에는 중동의 오일머니가 지역 분쟁으로 인한 국방비 지출로 낭비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저축으로 남거나 외채 상환 등에 쓰이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 경제가 더욱 안정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건스탠리에서 신흥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루치르 샤르마는 "지난해 역내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했을 때도 충격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은 GCC 금융 시장이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유가가 하락하면 금융 시장이 큰 타격을 받았던 1980년대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GCC 각국은 2010년에는 역내 통화를 통합해 EU의 유로화와 같은 단일 통화를 개발한다는 목표도 세우고 있다.

역외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해 '통합 통화'를 페르시아만 지역 내에서뿐만 아니라 신흥시장 및 주변국과의 무역 결제에도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