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인들의 화제는 단연 '대국굴기(大國山屈起)'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편을 다 봤다고 공식 석상에서 말하고,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도 시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국굴기' 학습 열풍까지 불고 있는 상태다.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이 말은 중국 국영방송인 CCTV가 지난해 만든 12부작 역사·경제 다큐멘터리 제목이다. 15세기 이후 세계적 강대국의 자리를 차지했던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9개국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굴기'라는 말은 '산처럼 솟구치며 일어서다'라는 뜻으로 '대국굴기'란 '강대국 일어서다' 정도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대국굴기'는 지난해 말 중국에서 방영돼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국내에서도 지난 1월 EBS가 방영한 이래 오피니언 리더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현재 국내에서는 '대국굴기'를 공식적으로 구할 수 없다. CCTV 측에서 이달 말께야 DVD를 국내에서 출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맡고 있는 최고경영자 교육 사이트 'HiCEO'가 최근 이들 9개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조망하는 '대국굴기에서 배운다' 특집 시리즈를 마련한 이후 많은 이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렇게 콘텐츠의 공급 자체가 부족한 데 1차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영자들이 이메일이나 전화로 전해 오는 사연을 들어 보면 '대국굴기'에 대한 관심은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제야말로 우리도 '강대국'을 논의할 시점에 이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강대국을 요즘 용어와 관점으로 바꾸어 보면 '선진 강국' 또는 '글로벌 초우량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 우리는 생존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지난 10여년을 보면 고개만 숙이고 있을 시대가 아니었다. 닷컴 기업과 젊은 기업인들이 등장해 재계 지도가 바뀌었다. 급속한 변화에 움츠리고 있을 필요가 없고 오히려 큰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늘면서 그동안과는 차원이 다른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모두들 눈에 불을 켜게 됐고 이 과정에서 '대국굴기'가 전하는 강대국의 비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말이다.

'대국굴기'에서 강대국으로 일어설 수 있는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강한 단결력,문화,그리고 새 체제로의 발빠른 변화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빨리 민족 국가를 세웠기 때문에 그 단결력을 바탕으로 바다를 정복하고 한때 세계를 양분했다. 프랑스는 계몽 사상을 바탕으로,영국은 과학기술과 학술을 기반으로 문화라는 엔진을 가동하며 초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주식회사,증권거래소,은행 등 새로운 체제를 빨리 갖춘 덕분에 우위를 가질 수 있었다. 단결력,문화,새 체제라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기업이나 조직에는 해 볼 만한 도전이 아닐까. '대국굴기'는 그런 점에서 기업들에는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

사실 '대국굴기'에서 배울 것이 많은 사람들은 정치 지도자들이다. 새로운 리더십을 결정하는 해,우리가 붙잡고 논의할 화두도 이처럼 거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