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거장)'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채권왕(Bond King)' 빌 그로스가 한 팀에서 일하게 됐다.

두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금리 전문가여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작년 1월 말 FRB 의장에서 물러난 뒤 '그린스펀 어소시에이츠'라는 컨설팅 회사를 차린 그린스펀은 최근 세계 최대 채권형 펀드인 핌코(PIMCO)와 자문 계약을 맺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6일 보도했다.

그린스펀으로선 컨설팅사 창업 첫 번째 손님으로 핌코를 맞이한 셈이다.

자문료가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핌코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채권왕으로 유명한 그로스라는 점이다.

이로써 금리에 관한 한 거장을 자처하는 두 사람이 금리 예측을 위해 머리를 맞대게 됐다.

그린스펀은 계약에 따라 분기당 한 차례씩 그로스와 함께 핌코의 전략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또 한 주에 두 차례씩 컨퍼런스콜 등을 통해 조언을 해 주게 된다.

운용 자산 6800억달러의 95%를 채권에 운용하는 핌코는 그린스펀을 영입하기 위해 1년 동안 공을 들였다.

그린스펀은 자서전이 출간될 때까지 계약에 응하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핌코는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주 핌코와 만난 그린스펀은 "지난 1년 동안 벤 버냉키 의장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통화 정책에 대해선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았지만 이젠 1년이 지난 만큼 통화 정책에 대한 사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통화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그린스펀은 핌코와 자문 계약을 체결하면서 "앞으로 3년 안에 G7(서방선진 7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리가 상승세를 탈 것"으로 예견했다.

"세계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 추세가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그로스는 "개인적으론 미국 경기 둔화로 앞으로 1년 안에 FRB가 기준 금리를 한 차례 내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기 추세에 대해선 그린스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해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나타냈다.

그로스는 그동안 그린스펀에 대해 상당히 날을 세워 왔다.

2005년 10월엔 "문제가 있으면 자금을 집행하고 위기 때는 항상 금리를 내리는 그린스펀의 접근법이 미국 경제의 변동성을 높였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 그로스가 이제 안면을 바꿔 "그린스펀 친화적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린스펀은 여전히 마에스트로임이 분명하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