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변화가 필요하다. 위험을 안고 과감히 행동에 나서겠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신임 대통령(52)은 16일 취임 일성으로 변화를 주창했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을 떠나는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뒷모습이 막 사라진 뒤. 그와 같은 중도 우파이면서도 차별화를 분명히 약속했다.

"세계 각국은 서로 빨리 변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데 프랑스는 무기력의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변화가 필요하다. 조금만 뒤지면 치명적이다." 시라크 정부에서 물려받은 경제는 부진하기 짝이 없다.

실업률은 유로존 13개국에서 가장 높은 8.7% 수준,성장률은 2%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바꿔놓겠다는 의욕을 보인 것이다. 한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인 세실리아와 5명의 자녀,친구,의회지도자들이 박수를 보냈다. 연설은 고작 10여분.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획기적인 정책 변화를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선거기간 중 대통령 취임 후 100일 안에 경직적이라는 평을 듣는 노동시장의 개혁방안 등을 포함한 새로운 비전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비전의 철학은 간략했다. "노동,노력,보수,존경 등에 대한 가치를 복원시키겠다"는 것. 사르코지는 "일반 시민들의 생활에 개선이 필요하기 때문에 새 정부는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우리는 새로운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언급,경제 성장 정책을 적극 펼칠 것도 시사했다. 또 유세기간 중 사회당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을 지지했던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을 포용하기 위해 통합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프랑스의 독립과 정체성을 지켜가겠지만 유럽연합(EU)의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그의 우파 성향에 대한 해외로부터의 일부 부정적인 시각을 의식한 듯 인종주의도 강하게 비판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취임식을 마친 뒤 개선문에 있는 무명 용사의 묘와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샤를 드골 장군 동상을 찾아 헌화한 뒤 파리 외곽 불로뉴 숲으로 이동해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저항했던 레지스탕스 처형장을 방문했다. 공식 일정을 모두 소화한 뒤 곧바로 베를린으로 날아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담을 갖고 당일 저녁 파리로 돌아왔다.

좌파 진영을 아우르기 위해 총리에는 온건개혁파이면서 측근인 프랑수아 피용 전 교육장관을,외무장관에는 좌파성향이면서 '국경없는 의사회(MSF)'를 창설한 사회당 인사 베르나르 쿠슈네를 내정했다. 새 내각은 18일 출범한다. 내각 참여가 예상되는 여성 인사로는 미셸 알리오 마리 현 국방장관,크리스틴 라가르드 대외 통상 장관,집권 대중운동연합(UMP) 대변인 발레리 페크레스,사르코지 대선 본부 대변인 라시다 다티 등이 거론되고 있다.

12년 만에 퇴임한 시라크 전 대통령은 사르코지의 환송을 받으면서 엘리제궁을 떠났다. 시라크 대통령 부부는 세느강변의 임시 거처에 거주할 예정이다. 1974년 총리 취임 이후 줄곧 공관 생활을 해온 시라크 대통령이 사저로 돌아간 것은 33년 만이다. 그는 자크시라크 재단을 만들어 사회공익사업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