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생의 얼굴을 사람들은 어떻게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알아볼까.

이처럼 인간의 기억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뇌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은 전 세계 신경과학자에게 주요 연구 화두였다.

이런 가운데 외부의 자극을 뇌 세포의 핵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인간의 장기 기억 형성에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새로운 단백질을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이 연구 성과는 치매 정신지체 등 각종 뇌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 작업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과학계는 평가하고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신경생물학연구실의 강봉균 교수(사진)팀은 'CAMAP'라는 단백질이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는 기억 신호 전달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자 세계적 과학저널 '셀' 인터넷판에 게재됐다.

지금까지 신경과학자들은 학습에 의한 외부 신호가 시냅스(뇌에서 신경전달이 일어나는 장소)를 통해 전해지면,유전자가 들어 있는 세포의 핵에서 장기 기억 형성에 필수적인 유전자들이 발현돼 새로운 단백질이 만들어지고,이를 통해 기억이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사실은 밝혀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단백질이 외부 신호를 시냅스에서 핵으로 전달하는 '전령자'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었다.

강 교수팀은 이 점에 주목,시냅스에 존재하는 접착 단백질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신경세포 접착 단백질인 apCAM과 상호 결합하는 단백질인 CAMAP를 발견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학습에 의해 외부 신호가 뇌에 들어오면 시냅스에 존재하는 PKA라는 효소가 활성화 돼 CAMAP가 세포막에 고정돼 있는 apCAM에서 떨어져 나온다.

이렇게 떨어져 나온 CAMAP는 시냅스에서 핵 내로 이동,또 다른 장기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단백질인 CREB와 결합해 장기기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의 발현을 증가시킨다.

강 교수팀은 연구 과정에서 CAMAP의 기능을 마비시키면 장기기억이 형성되지 못하는 것을 보임으로써 인간의 기억이 장기적으로 저장되는 과정이 시작되려면 CAMAP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 같은 연구 성과는 기억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새로운 신호전달 원리를 밝혔을 뿐 아니라 이를 응용해 기억의 형성 과정을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 교수는 "앞으로 CAMAP처럼 장기 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단백질들의 기능과 신호전달 네트워크를 추가적으로 밝혀내면 인간의 기억을 제어하거나 각종 뇌 질환을 치료하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