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환자들이 찾아오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의료기관 간에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중소 병원들의 상당수가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그렇지만 환자들이 연일 몰리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의사의 실력이나 위치,시설 등이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환자 입장에서 정성을 다해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류머티즘 치료에서 명성이 높아 최소 수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는 서울 A내과의 사례를 보자.A 원장은 한 할머니가 아들 등에 업힌 채 진료실에 들어오자 입구까지 달려나오며 "아니,어머니 발이 어떻게 이리 되셨어요"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의사가 처음 보는 환자를 보고 대뜸 어머니라니,그간 숱한 병의원을 다녀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던 환자로서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A 원장은 물수건으로 환자의 발을 손수 마사지하면서 병력(病歷)을 듣고나서 "식사 후에 약 드세요.

그런데 주사 놓으면 아파요.

며느리 보고 반찬 챙겨달라고 하세요.

꼭 3주 뒤에 다시 오세요"라고 당부한다.

서울 B내과 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환자의 눈을 지켜보면서 힘들었던 사연을 주의깊게 끝까지 듣는다.

환자가 아픔을 호소할 때에는 눈물까지 고일 정도로 마음을 연다.

환자의 말이 끝나면 두 손을 꼭 잡고 따뜻하고 정이 담긴 목소리로 위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간 얼마나 고생 많으셨습니까.

이제 안심하세요.

제가 낫게 해드릴께요." B내과의 진료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되지만 오전 6시부터 대기석이 환자들로 채워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파도 참아야 합니다.

반드시 이 약을 제 때 드세요"라며 권위를 앞세우는 의사는 설 땅을 잃는 반면 "얼마나 아프세요"라며 환자와의 감정 공유를 중시하는 의사는 환영받는 세상이다.

비단 의료계뿐만 아니다.

언제든지 고객들이 경쟁사 제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현실에서 고객의 말이 설령 틀린다 해도 회사 측이 옳고 그른지부터 따지는 것은 최악의 마케팅 기법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서비스나 품질에 대한 불만일수록 '맞습니다. 그렇고 말고요'로 요약되는 공감(共感)마케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한양대 경영학부 홍성태 교수의 지론이다.

고객이 불평을 털어놓으면 일단 끄덕거리면서 달랜 뒤 방금 말한 내용을 비슷하게 바꿔 되묻고 고객의 다음 얘기에 관심을 보이는 방식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EQ(감성지수)의 시대를 맞아 타인과 공감을 잘하는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깨닫고 그 사람 입장과 그 사람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오랜 방황 끝에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으로 대박을 터뜨린 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는 포천 지와의 인터뷰에서 "젊은이가 되어 그들의 조건에서 경험해본 뒤 성공의 열쇠를 찾았다"며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고객과 처음 만날 때 이것부터 실천해보자.상대방의 눈을 맞춰 바라보는 것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대화를 이끌어내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최승욱 논설위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