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철도 길 열렸다] 남북 접촉만 61차례‥7년만에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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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열차가 마침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일회성이긴 하지만 남북이 철도 연결에 합의한 지 7년 만에 힘들게 얻은 결실이다.
그동안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당국 접촉만 61차례나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 5월25일로 D-데이를 잡았다가 북한 군부가 반대해 행사 하루 전날 취소되면서 최대 고비를 맞기도 했다.
당시 북한 군부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돌파하기 위해 핵 실험이라는 충격 카드와 철도 연결 등 긴장 완화 카드를 쥐고 있다가 막판에 핵 실험을 선택했다.
원래 지난해 실시될 예정이었던 철도 연결은 북·미 갈등이라는 막강한 변수와 남북 화해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 속에 추진력을 잃어 1년이나 '동작 그만' 상태에 있었다.
정부가 올해 이 사업을 다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12월 북핵 6자회담이 재개되고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해결에 나서면서 북·미 간 긴장 수위가 크게 낮아진 요인이 크다.
정부는 올해 3월 제20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상반기 내 열차 시험운행 합의를 얻어낸 데 이어 한 달 후 열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13차 회의에서 날짜를 확정했다.
올해 북한 군부는 지난달 판문점에서 열린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군사보장 조치를 승인했다.
남북이 철도 연결에 처음 합의한 것은 2000년 7월 제1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다.
경의선 철도가 먼저였다.
당시 남북은 역사적인 6·15 정상회담 이후 전례 없는 화해 분위기였다.
2년 후 김대중 정부의 대북 특사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별보좌역이 방북해 동해선 철도 연결 합의도 얻어냈다.
2002년 9월 공사가 시작돼 경의선 철도는 그 해 12월,동해선은 2005년 12월 궤도가 완성됐다.
그 사이 2004년 4월 열차 운행에 관한 기본 합의서가 나왔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일회성이긴 하지만 남북이 철도 연결에 합의한 지 7년 만에 힘들게 얻은 결실이다.
그동안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당국 접촉만 61차례나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 5월25일로 D-데이를 잡았다가 북한 군부가 반대해 행사 하루 전날 취소되면서 최대 고비를 맞기도 했다.
당시 북한 군부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돌파하기 위해 핵 실험이라는 충격 카드와 철도 연결 등 긴장 완화 카드를 쥐고 있다가 막판에 핵 실험을 선택했다.
원래 지난해 실시될 예정이었던 철도 연결은 북·미 갈등이라는 막강한 변수와 남북 화해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 속에 추진력을 잃어 1년이나 '동작 그만' 상태에 있었다.
정부가 올해 이 사업을 다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12월 북핵 6자회담이 재개되고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해결에 나서면서 북·미 간 긴장 수위가 크게 낮아진 요인이 크다.
정부는 올해 3월 제20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상반기 내 열차 시험운행 합의를 얻어낸 데 이어 한 달 후 열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13차 회의에서 날짜를 확정했다.
올해 북한 군부는 지난달 판문점에서 열린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군사보장 조치를 승인했다.
남북이 철도 연결에 처음 합의한 것은 2000년 7월 제1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다.
경의선 철도가 먼저였다.
당시 남북은 역사적인 6·15 정상회담 이후 전례 없는 화해 분위기였다.
2년 후 김대중 정부의 대북 특사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별보좌역이 방북해 동해선 철도 연결 합의도 얻어냈다.
2002년 9월 공사가 시작돼 경의선 철도는 그 해 12월,동해선은 2005년 12월 궤도가 완성됐다.
그 사이 2004년 4월 열차 운행에 관한 기본 합의서가 나왔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