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아픔과 회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지긋이 견딥니다 남은 생애를/ 헤아리는 것 또한 나에게 주어진/ 몫이려니 나의 육신이/ 누리는 마지막 행복이려니/ 그저 이렇게 미루어 짐작하고/ 땅거미 내릴 무렵/ 마당 한구석에서 나를 앉혀 둡니다.'('땅거미 내릴 무렵' 중)

시인 김광규씨가 아홉번째 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문학과지성사)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를 유지한다.

시집 제목처럼 '시간의 손에 등을 떠밀려 세속의 생업 현장에서 물러선' 자신이지만 지난 삶에 대해 회한이나 원망은 없다.

대신 3자적인 시선으로 관찰한 것을 시적 언어로 끄집어 낸다.

이에 대해 시인은 "늙을수록 사람들은 궁상스럽게 보이길 싫어한다"며 "내 시의 분위기가 그런 것도 젊은채 하기 위한 허장성세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는 차갑지 않다.

주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그대로 느껴진다.

'어려운 세월 악착같이 견뎌내며/ 여지껏 살아남아 병약해진 몸에/ 지저분한 세상 찌꺼기 좀 묻었겠지요/ 하지만 역겨운 냄새 풍긴다고/ 귀여운 아들딸들이 코를 막고/ 눈을 돌릴 수 있나요'('치매환자 돌보기' 중)처럼 삶에 대한 통찰과 반성을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언어를 꾸미고 뒤틀기보다 자신이 관찰한 '사실'의 유기적인 나열로 시적 감동을 주는 그의 특징은 이번에도 드러난다.

36년간의 교직 생활을 뒤로 한 시인은 "시작(詩作)에 전념할 일이 여생의 수업으로 남아 다행"이라며 "노년에도 내 몫의 진솔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갈잎들 적시며/ 땅으로 돌아가는 어쩌면 마지막/ 빗물이 잠시 머물러/ 조그만 가을 거울에 온 생애를 담고 있습니다.'('가을 거울' 중)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