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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웬저(Ralph Wanger)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손꼽히는 소형주 투자의 선구자다. 그는 1970년대 초 대부분 투자자들이 대형 우량주를 일컫는 '니프티 피프티'(Nifty-Fifty)에 초점을 둘 때 소형주에 투자하는 '에이콘 펀드(Acorn Fund)'를 운용해 탁월한 성과를 올렸다.

웬저는 흔히 대형 우량주에 투자해야 수익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믿음에 대한 역발상을 강조한다. 내실 있는 소형주에 투자해야 장기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

웬저는 얼룩말 무리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운용 철학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얼룩말이 사자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면 무리의 중간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신선한 풀은 가장 바깥쪽에 있는 얼룩말이 뜯어 먹을 것이다. 대부분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무리의 맨 바깥 쪽에서 배불리 풀을 먹는 얼룩말이 될 수 없다. 이들은 대중들에게 인기 높은 주식만 사들이면 절대로 질책 받을(사자에게 먹힐)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얼룩말을 운용자로,사자를 시장 내지 투자자로 비유한 설명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펀드 매니저들을 우회적으로 질타한 셈이다.

그는 작은 기업은 애널리스트의 단골 분석 대상이 아니란 점,그리고 숨은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순간 천정부지로 주가가 치솟을 것이란 점을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로 거듭나는 것처럼 틈새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알찬 중소기업을 주목하라는 얘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타결로 한국 경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우리 중소기업계는 큰 시련기에 접어든다. 일부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으로선 미국 시장 진출의 기회가 늘어나 좋겠지만,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업체는 존립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지금까지 비교적 안일한 환경 속에서 성장해 왔기에 더욱 그렇다. 고도의 기술과 정보력을 지닌 미국 중소기업의 제품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업체가 늘어나야 한다.

낙후된 기술과 노후된 생산 시설로는 한·미 FTA가 불러올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국내 중소기업 제품의 기초 설비인 주물과 금형 시설,열처리와 단조 시설은 선진국 수준에 비해 너무 노후했을 뿐만 아니라 생산 기술이 전근대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다수의 중소기업들이 사자에게 먹히지 않도록 몸을 움츠리고 있는 상황이지만,해당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들은 있게 마련이다.

경기도 안산과 인천에 각각 연구소와 공장을 두고 있는 평면발광소재(EL) 전문기업 ㈜미래이엘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알아준다.

세계 LED생산 1위 업체인 중국 건륭그룹과 합작회사를 세우기로 한 이 회사는 내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쓰일 각종 광고간판과 표지판,경기장 내부 인테리어에 EL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주로 LCD 백라이트용으로 생산되는 이 회사의 EL은 휴대폰,PDA 등 첨단 정보통신기기뿐만 아니라 전광판,인테리어 소품 등에 널리 쓰이는 차세대 평면 광원이다. 기존 발광다이오드(LED) 타입의 조명에 비해 얇고 균일할 뿐만 아니라 선명하며,소비전력은 오히려 3분의 1에 불과하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국내 중소기업 중에서도 ㈜미래이엘처럼 수십,수백 명의 임직원만으로 한 우물을 파며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선 회사가 적지 않다.

세계 최강 국내 미니기업들의 공통점은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끊임없는 기술개발 노력,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영방식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한 지금 거둔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한다는 것,나름대로 틈새시장을 찾은 뒤 해당 분야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한다는 점 등이다.

이 같은 성공사례는 변화를 두려워 해 '얼룩말 무리 한 가운데서' 철학 없이 생존에만 급급한 중소기업들에 '혁신'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신재섭 기자 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