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의 질책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회사가 급성장하다보니 조그만 식당을 할 때 제 단골손님을 챙기듯이 고객님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질책이 제가 초심으로 돌아가 고객을 섬길 수 있도록 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닫게 됩니다.

(중략)무슨 말로 상처받은 자존심을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달 초 회장실로 불만을 제기한 한 손님에게 김순진 회장(사진)이 보낸 이메일의 일부다.

이 손님은 서울 강남의 한 가맹점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했는데,가장자리가 깨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내주는 데 격분했다.

그는 기어코 오너의 사과를 받아내야 겠다고 작심,매일 항의 전화와 메일을 본사로 해댔다.

김 회장은 간부들의 보고를 받는 즉시 장문의 메일을 날렸다.

답신은 금방 왔다.

"성실한 답변에 분노가 눈 녹듯 사라졌다"는 것.김 회장은 또 한번 감사의 메일을 보냈다.

"내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 메일을 보낸 게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메일을 또 보냈어요." 이 사건을 통해 직원들은 회장을 다시 보게 됐다.

고객감동은 말이 아니라 실천임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1952년생인 김 회장의 삶은 한마디로 억척스럽다.

그에게 있어 놀부는 '욕심의 화신'이 아니다.

운명에 도전해 미래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야망의 상징이다.

그게 좋아 첫 점포 간판을 놀부로 정했다.

10대 소녀 시절,고향인 충남 논산의 집안 사정은 척박했다.

이런 가난이 싫어 그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무작정 상경했다.

중·고등학교 과정은 40세가 넘어 검정고시로 해결했다.

대학생이 된 것은 46세 때인 1997년이었다.

2004년에는 경원대 대학원에 들어가 석·박사 과정을 내리 밟았다.

지난해 8월 경원대에서 관광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긴 만학의 길에 마침표를 찍었다.

주부에서 사업가로 변신하면서 고난의 길은 이어졌다.

첫 점포를 연 것은 30대 초반."백반에서 해장국,돼지갈비까지 취급 안해본 게 없지만 신통치 않았어요.

결국 서울 신림동에서 놀부 간판을 달고 보쌈에 승부를 걸었는데 이게 히트를 친 겁니다."

그는 가맹점을 아무나 내주지 않는다.

오로지 점포 하나에 승부를 걸 생계형 창업자 중 성실한 사람만 가려 뽑는다.

김 회장은 "새로 창업한 음식점 중 약 30%가 1년 안에 문을 닫는 현실에서 아무나 외식업에 뛰어들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김 회장은 놀부 브랜드를 외국 대도시 길거리에서도 마음껏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마지막 꿈이다.

대충 준비해 무모하게 나갔다가 실패하지 않도록 해외시장 공략 계획은 손수 만지고 또 다듬는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