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황진이가 절세 미인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동네 총각을 상사병으로 죽게 만들고,생불(지족선사)을 유혹해 파계시킬 정도였으니….'동짓달 기나긴 밤을' '청산리 벽계수야' 등의 시조들은 뛰어난 예술적 재능까지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접속'의 장윤현 감독은 새 영화 '황진이'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생이나 예술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던 그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천한 기생이 되고,사랑하는 이와 맺어질 수 없는 황진이(송혜교)의 슬픈 운명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신분차별 등 사회 모순에 항거하는 것은 황진이의 새로운 면모.시대에 대한 저항은 황진이의 분신이자 일생의 연인인 화적떼 두목 '놈이'(유지태)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표출된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기도 한 북한 작가 홍석중씨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답다.

총 제작비 100억원을 들인 대작답게 홍등가인 '청교방'이나 위엄있는 관가 등의 배경은 너무나 잘 만들어졌다.

쥐불놀이와 관혼상제 등의 재연도 사극의 묘미를 한층 살려준다.

금강산 설경을 비롯해 남원 광한루,담양 소쇄원 등 남북한의 절경들은 작품의 품격을 높여준다.

특히 현대적 감각의 한복과 화장을 한 황진이의 자태는 때로는 순수하게,때로는 고혹적으로 다가와 감탄을 자아낸다.

"작년 한 해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는 송혜교는 예술인의 모습을 부각시킨 TV드라마 '황진이'의 하지원과는 분명 차별화된 황진이의 원형을 완성해냈다.

뛰어난 춤 실력을 보인 하지원의 황진이가 서양의 현대적인 미녀를 연상시킨다면 송혜교는 모진 세파를 참고 이겨내는 '외유내강'의 단아한 한국 여인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는 특정 장면을 강조하는 등의 기교없이 서사적으로 전개된다.

절정부를 향해 긴장감을 고조시키지 않는 대신 황진이의 삶을 깊이 곱씹어볼 수 있게 해준다.

"침체된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주기를 기대한다"는 제작사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 말처럼 '슈렉3'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흥행 대결을 펼쳐야 하는 대작이지만 상업영화라기보다 오히려 예술영화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천천히 맛과 향을 음미해야 하는 '전통차'를 마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억지스러운 반전이나 코미디 등 톡 쏘는 '콜라'같은 자극적 설정에 익숙해진 관객이라면 다소 긴 호흡이 필요할 것 같다.

6월6일 개봉.15세 이상.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