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11시께 전화벨이 울렸다.

오랜 직업 경험상 응급상황에 빠진 환자로부터 걸려 온 전화임을 직감했다.

정형외과를 개업 중인 대학 선배가 "처남이 가슴통증이 심하고 식은땀을 흘려 응급실로 가고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환자는 혈압 80mmHg에 호흡곤란,쇼크 상태를 보였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3개 중 하나가 막혀 심장 기능이 60%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막힌 혈관을 개통하는 시술에 들어갔고 30분 후 혈압이 상승하면서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통증이 시작되자마자 지체 없이 병원으로 왔기에 거의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었다.

심도자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부인은 회복 소식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이번엔 흥분한 어조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남편은 얼마 전 담배를 끊었고 단축마라톤에 나갈 정도로 건강에 신경을 써왔으며 최근 나온 건강검진 결과도 약간의 비만 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판정받았는데 어떻게 돌연사 문턱까지 왔냐고 따졌다.


필자는 이런 항의성 질문을 하도 여러 번 들어본지라 다시 한번 환자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이유를 설명해줬다.

46세의 환자는 심장혈관 촬영 결과 혈관이 50% 정도 좁아져 있었다.

심한 협착은 아니지만 협착 부위에 균열이 생기면서 발생한 혈전(피떡)으로 인해 혈관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폐쇄된 혈관 외에 다른 혈관은 전반적인 노화현상을 보여 혈전이 곧 발생할 징후들을 볼 수 있었다.

콜레스테롤은 높지 않았고 당뇨병도 없었지만 혈액 내 염증 물질수치가 아주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복부비만과 만성치주염이 있으나 치료하지 않은 상태였다.

음식은 가리지 않는 편이나 업무상 패스트푸드 등으로 끼니를 자주 때웠다고 한다.

환자가 쓰러진 이유는 혈관이 좁아진 것이 주 원인이 아니고 혈관 내 염증 물질로 인한 혈관 파열로 밝혀졌다.

실제 나이는 46세이나 혈관의 노화 상태는 70세를 웃돌고 있었다.

돌연사의 주범인 심장병과 뇌졸중은 동맥경화에서 비롯된다.

동맥경화는 주로 고혈압 고콜레스테롤혈증 당뇨병 흡연 가족력 등에 의해 발생한다.

그러나 실제 환자의 절반가량은 이런 위험인자 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의학계는 이를 '원인 불명의 심장병'으로 명명해왔다.

그런데 최근 각종 염증물질들이 심장과 뇌혈관을 갉아먹는다는 학설이 밝혀졌다.

심근경색 환자의 3분의 1가량이 평소에 전혀 이상한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거나,최근 젊은 층에서 심장병 발생이 높은 것을 이 학설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심장마비로 돌연사한 사람을 부검해 보면 의외로 심장혈관 협착이 경미한 것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거꾸로 다른 사고로 사망한 80∼90대 고령자의 혈관은 협착이 심해도 염증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즉 협착이 있어도 염증이 없다면 장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혈관의 염증은 어떻게 생기나.

우선 치주염 관절염 위염 대장염 폐렴 등의 염증질환이 주범이다.

만성치주염은 흡연하며 비만 당뇨병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서 특히 잘 생긴다.

미국 인구의 75%가 만성치주염을 앓고 있고 20∼30%는 심한 상태이다.

중증 치주염 환자는 심근경색증이 발생할 확률이 4배 더 높다.

잇몸에서 발생한 염증물질이 혈류를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며 혈관을 갉아먹고 파열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실린 미국 코네티컷대학과 영국 런던대학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만성치주염을 적극적으로 치료할 경우 두 달 안에 염증물질이 정상화되고 혈류도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인 경우에도 복부 지방 내에서 염증물질이 분비된다.

담배 역시 강력한 염증작용을 일으킨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름,지나친 스트레스,음식 속의 화학물질,과도한 동물성 음식 섭취,트랜스지방도 염증물질을 증가시킨다.

혈액 속에 염증물질이 얼마나 있나 검사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10가지가 넘는 염증물질이 혈액에 존재하지만 'C-반응성 단백질'(C-reactive protein: CRP)을 검사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염증물질이 증가하는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므로 이를 차례로 제거하는 게 돌연사 위험을 예방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오동주 고려대 구로병원장(심장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