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 리 < 하나로텔레콤 부사장 janice.lee@hanaro.com >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는 비운의 인물이다.

깃털로 만든 날개를 밀랍으로 몸에 붙인 후 하늘을 날지만,너무 높이 올라 태양의 뜨거운 열에 밀랍이 녹으면서 바다에 추락한다.

경영학에도 '이카루스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핵심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이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고 그 경쟁력의 덫에 빠져 결국엔 실패하게 된다는 얘기다.

과거 스위스의 시계산업이 대표적인 예다.

정교한 시계라는 날개를 달고 시계 시장을 장악하던 스위스는 1980년대 디지털과 대량 생산으로 무장한 일본과 홍콩 시계 메이커의 도전을 받는다.

세계 시계 시장에서 약 40%를 차지했던 스위스 시계는 1980년대 초반 15%까지 떨어졌고,일본과 홍콩에 밀려 3위 국가로 추락하고 만다.

스위스의 스와치그룹은 오랜 연구 끝에 스위스 시계의 정교함과 이로 인한 고가 전략이 스위스 시계산업을 망쳐버렸다는 판단을 내렸다.

스와치그룹의 노력에 힘입어 스위스 시계는 다시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권위를 회복했지만,이미 스위스의 많은 시계 장인들은 시계 수선공으로 전락한 후였다.

지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기업이 명멸하는 속도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포천지는 세계 500대 기업 중 3분의 1이 바뀌는 데 불과 5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는 뭐든지 빨리빨리 하는 우리나라의 국운을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다.

우리 국민은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도 빠르다.

반면에 버리지를 못한다.

성과주의 경영을 하는데,과거의 나눠먹기식 문화를 버리지 못하면 조직과 개인에게 혼란만 가중된다.

최근 혁신에 나선 공무원 사회의 성패는 새로운 제도를 얼마나 빠르게 도입하느냐보다는 과거의 의식을 얼마나 빠르게 버리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빠른 학습 능력이라는 날개를 달고 짧은 시간에 높이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성장하는 동안 적절히 버렸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제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과거의 것을 찾아서 버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신화의 나머지 부분이다.

이카루스와 같이 비행을 준비하는 아버지 데이달루스는 말한다.

"바다와 태양의 중간을 날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네 날개의 밀랍이 녹아 떨어지거나,파도에 날개가 젖어서 가라앉게 될 거야."

태양을 향해 솟아오로는 이카루스와 과거의 것을 버리지 못해 파도에 날개를 적시는 또 한 명의 이카루스가 우리의 모습이다.

신화의 마지막은 바다와 태양의 중간을 날아간 아버지 데이달루스만이 무사히 시칠리아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