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星 來 <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과학사 >

지금 고교 1년생이 치를 2010학년도 대학입시부터는 국사(國史)가 필수가 된다고 한다.

지난 22일의 보도를 보면,인문사회계열 수능시험에 국사를 필수로 넣기로 경인지역 대학의 입학처장 협의회가 결정했다는 것이다.

인문사회계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국사시험을 반드시 치러야 할 판이다.

수능에서 해마다 국사 선택비율이 떨어져 왔기 때문에 그런 결정이 나왔다고 한다.

2004학년도 47%이던 인문계 학생들의 국사 선택비율은 매년 떨어져 올해는 22%에 그쳤다는 것이다.

윤리 세계사 등 사회탐구 11개 과목 중 7번째로 낮은 비율이다.

점수 따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인문계 5명 중 1명 정도만 국사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입학처장협의회는 국사 필수를 자연계열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우선은 반가운 결정이다.

하지만 국사의 필수화는 우리들에게 몇 가지 그 다음의 문제를 던져준다.

과연 국사 과목을 필수화한다는 근본적 목적이 무엇인가? 아마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의 동북공정,일본의 우경화 경향 등을 걱정하면서,그 대책으로 우리도 국사 교육을 강화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듯하다.

하지만 이런 동아시아 세 나라 사람들의 자존심 싸움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는 오히려 걱정되는 대목이다.

사실은 한국의 역사를 우리가 '국사'라 부르는 것부터가 조금은 지나친 민족주의적 현상이다.

한국 사람들의 역사를 보는 관점은 민족주의적이고,때로는 국수주의적일 때가 많다.

일부 학자들이 이미 주장하듯,우리도 머지않아 '우리 국사(國史)'를 '한국사(韓國史)'로 고쳐 부르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말이다.

사실 자꾸 좁아지고 있는 지구촌의 촌민일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의 교양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한국만의 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국사 과목을 필수화하는 정도가 불가피할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도적인 과정으로만 환영할 일이지,너무 길게 갈 일은 못된다.

이번 주말(6월 1일과 2일)'제50회 전국역사학대회(서강대)'를 맞는 역사학도들에게는 국사 과목의 필수화는 우선 반가운 소식임이 분명하다.

전국의 15개 역사학 관련 학회가 함께 진행하는 이 모임은 원래 1958년 역사학회와 진단학회(震檀學會)가 함께 시작한 것인데,이제 그 50년째를 맞으며 국사교육에 돌파구를 맞을 수도 있는 이번 조치가 역사학도들에게는 고무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국사를 수능의 필수로 하면 다른 과목은 어쩌란 말인가에 다음 생각이 미치게 된다.

아무래도 국사 쪽으로 수험생들을 몰아가면,자연히 다른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줄어 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고교에서 가르치는 과목 가운데 어느 것이 꼭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는 판단이 가능한 일일까 생각하게 된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교육의 필수과목이란 항상 바뀌어 오늘의 한국 대학 입시과목으로 진화해 왔다.

그리고 이런 진화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하다.

어느 과목이 우선적이라고 정하는 것은 그 때 그 곳의 시대정신일 뿐이다.

그것은 그 시대 지성인들의 경쟁과 토론에서 정해질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당연히 떠오르는 것이 대학의 자율성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대학의 입학시험은 각 대학에 맡기는 것이 이치에 맞다.

평생 대학에서 지내다가 정년퇴임한 나로서 가장 말도 안 되는 한국 정부의 짓거리는 대학 입시를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이다.

역대 한국정부의 교육정책 바탕에는 어쭙잖은 평등사상이 깔려 있다.

하지만 입시 과목수를 줄이거나,문제를 쉽게 내 과외비를 줄이고,평등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모자란 생각이다.

그리도 평등이 소원이라면,대학 입시를 제비뽑기로 하는 수밖에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입학처장협의회가 국사 과목을 필수로 하는 것만 결정할 것이 아니라,각 대학이 입시방법을 자율적으로 하겠다고 결의하는 날이 하루속히 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