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저녁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유통 주간'으로 선포된 지난주 각종 일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유통인의 밤' 행사에 대형 마트(할인점),백화점,TV홈쇼핑 등 유통업계와 정부 관계자 500여명이 몰려 넓은 만찬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유통인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는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퓨전 국악 연주와 비보이 공연.'전통'과 '현대'가 한데 어우러져 제3의 문화가 창조되듯 유통시장에서도 대기업과 중소상인들이 상생 협력해 새로운 유통문화를 만들어내길 바라는 소망이 담긴 상징적인 공연이었다.

하지만 잔칫날을 맞은 유통인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경기 회복의 온기가 감지되고 있다지만 유통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은 대형 마트에 대한 출점 허가제를 비롯 영업시간과 품목까지 제한하자는 법안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대형 마트의 건축 허가가 지역상인들을 의식한 지자체의 행정절차 지연으로 마냥 표류하고 있다.

때문에 유통업계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A사 대표이사는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 조치가 국내 유통산업을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뜨릴 것"이라며 "세계 12위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이 세계 유통시장에서는 고작 70위권"이라고 탄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년 전 정치권에서 앞장선 유통업체 셔틀버스 운행 중단 조치를 예로 들면서 "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자가용을 끌고나와 대량 구매를 하는 바람에 교통혼잡을 부추기고 대형 유통업체의 경영수지 개선을 도와주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영업시간 제한을 주장하면서 독일 사례를 거론하는데,한마디로 무식의 소치"라며 "유럽 각국에서 소매점 영업시간을 제한한 것은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취지이지,중소상인 보호에서 출발한 입법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퓨전 국악과 비보이가 해외로 나가 국위를 떨치는 21세기에 유통 분야만은 정치권의 '인기몰이 입법' 탓에 20세기로 되돌아갈 위기에 몰려 있다.

김진수 생활경제부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