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찾아가지 않은 비실명 무기명 증권금융채 원리금 1500억원어치의 주인은 누구일까.

만기가 이미 지나 이자가 한 푼도 붙지 않는데도 '묻지마 채권'을 찾아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27일 한국증권금융에 따르면 이날 현재 상환을 기다리고 있는 비실명 무기명 증금채는 원금 1080억원,이자 400억원 등 모두 1480억원에 이르고 있다.

증금채는 현대투신(현 푸르덴셜투자증권) 지원자금을 마련하고 지하자금 양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1998년 10월31일 발행된 5년짜리 채권.당시 실세금리는 연 13% 수준으로 연 6.5%의 낮은 금리로 발행됐지만 비실명 무기명이란 '특혜'가 주어져 2조원어치가 바로 팔려나갔다.

국세청의 자금출처 조사가 면제되고 상속세 및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돼 '묻지마 채권'이란 별명이 붙여질 만큼 인기를 모았다.

증권금융은 만기일인 2003년 10월31일 상환요청에 대비해 원금 2조원과 이자 7400억원 등 2조7400억원을 준비했다.

만기일엔 40%가 약간 넘는 1조1500억원어치가 상환됐으며 1년 뒤인 2005년 10월 말까지 모두 2조3000억원어치가 주인에게 돌아갔다.

이후 주인들이 1년마다 1300억원가량 찾아가 지난해 10월 말엔 모두 2조5600억원어치가 상환됐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는 찾아가겠다는 사람들이 뚝 끊겼다.

증권업계에선 남아 있는 증금채 주인이 적게는 수 명,많아봐야 20~30명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증금채는 1000만원,1억원,10억원권 등 3종류가 발행됐다.

이 가운데 1000만원과 1억원권은 대부분 찾아간 것으로 전해진다.

찾아가지 않으면 그만큼 이자손실이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아 있는 주인들은 이자 수억원 정도는 전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큰손'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증권사 채권영업 담당자는 "아마도 남은 주인들은 50억원 이상씩 갖고 있을 것이며 그들의 재산은 적게는 수백억원,많게는 수천억원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아까운 돈을 썩혀두고 이유는 뭘까.

증권금융은 "지난해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인 재용씨가 증금채를 현금화한 데 대해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이 있는지 조사에 나선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해석하고 있다.

이는 재정경제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전재용씨가 채권을 제시하고 찾아가서 자신과 아들한테 입금시킨 것을 파악한 후 이상하다고 검찰에 통보해 알려지게 됐다.

'큰손' 입장에선 괜히 지금 돈을 찾아가서 주목을 끌 필요가 없는 만큼 이자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사회적 관심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증금채 주인들이 일단 다음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증권금융은 상환 요청이 들어오면 2~3일 내 즉각 현금으로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은행 계좌로 이체되면 관련사항이 FIU로 통보되며,5000만원 이상 현금으로 찾아가도 FIU에 보고하는 것이 의무화돼 있다고 덧붙였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