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는 관가에서 대표적인 '합리주의자','개방주의자'로 꼽힌다.

두 컨셉트를 아우르는 배경은 아마도 미국일 것이다. 그 자신이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딴 데다 평소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신봉하는 관료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 한 총리가 외국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국가기간 산업 보호를 골자로 하는 '한국판 엑슨-플로리오법'에 대해 재계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한 선입견을 드러냈다.

지난 2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한 오찬 행사에서다. 한 총리는 "우리나라는 경제규모로 볼 때 세계에서 '미들 사이즈(Middle Size)'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런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 유치는 반드시 필요한 과제"라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한국판 엑슨-플로리오법'의 도입은 시의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한 총리의 선입견'에는 몇 가지 논리적 함정이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게 꼭 외국인 투자유치뿐인가라는 점과 성장못지않게 중요한 기업의 백년대계는 누가 도와줄 것인가라는 점이다.

한 총리가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미국이 1988년 엑슨-플로리오법을 제정한 상황을 되돌아 보면 정부와 관료가 어떤 논리로 무장해야 옳은지를 가늠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국가안보를 지키겠다는 논리를 내세워 엑슨-플로리오법을 만들었다. 미국이 정한 국가안보 산업의 개념은 자원,반도체,로봇공학,제약 등과 같은 기술집약 산업에서 출발했으나 점차 에너지,통신으로 확대됐다. 결과는 미국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나타났다.

'선(先) 성장 후(後) 기간산업 보호'라는 한 총리의 생각은 '순진한' 발상일 따름이다. 에너지,통신,자동차,철강 등의 기간산업이 튼튼해야 경제성장이 지속가능하다는 산업정책 측면에서뿐이 아니다.

외국기업의 국내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는 실재적 상황이어서다. 실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기업들은 외국자본으로부터의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총 7조3000억원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아메리칸 스탠더드'는 현실에서 기초하는 게 아닌지 한 총리에게 묻고 싶다.

김현예 산업부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