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윤모씨(31)는 얼마 전 큰맘 먹고 구입한 휴대폰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분통이 터진다. 윤씨가 산 것은 국내 최초로 시판된 휴대폰 겸용 와이브로 휴대폰 'SPH-M8100.'

초고속 무선통신인 와이브로를 비롯 다양한 인터넷 기능과 PDA,스마트폰,지상파 DMB,동영상 편집기,가상 5.1CH 적용,MMC-MICRO의 외장 메모리,애니 다이얼 기능,블루투스,디지털 카메라 등 최첨단 기능들로 무장한 휴대폰이라 8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기꺼이 지불했던 것.

그러나 구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고장을 일으키는 등 첨단 휴대폰이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전화를 하던 중 갑자기 휴대폰 전원이 꺼지거나 화면이 하얗게 변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가 하면 와이브로 기능을 사용할 때마다 휴대폰이 다운돼 버리기도 한다. "그러기에 복잡한 기능 다 빼고 가격 저렴한 휴대폰으로 살 것이지 왜 사서 고생이냐"는 아내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윤씨는 후회한다.

◆기술 진화냐 상술이냐

업체들은 기술 진화로 컨버전스 제품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음성 위주의 통화에서 화상 대화가 가능하게 되고 고화질 카메라가 달리면서 사진을 찍어 전송할 수도 있게 된 것은 컨버전스의 힘이라는 것.항상 들고 다니는 휴대폰에서 지상파 DMB로 TV를 시청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술 진화의 혜택이라고 강조한다.

동영상을 주로 보는 휴대용 멀티미디어기기(PMP)에서 전자사전 기능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사실 사용자 입장에서 나쁠 게 하나도 없다는 주장도 한다.

자동차에선 내비게이션으로 쓰다가 평소엔 손에 들고 다니면서 PMP나 MP3 플레이어로 쓸 수 있고,디지털 카메라로 음악을 듣거나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컨버전스는 사용자들에게 축복임이 분명하다는 것.

하지만 위에서 예로 든 직장인 윤씨처럼 기술바탕을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DMB에 MP3,전자책 등 온갖 기능이 들어간 내비게이션 제품을 샀는데 정작 지도 수신이 잘 안 되거나 PMP를 샀는데 동영상이 자꾸 끊겨서 재생이 원활하지 않다. 또 무선 인터넷이 되는 제품이라고 해서 구입했는데 정작 추가 비용이 엄청나게 들거나 무선인터넷 수신율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디지털카메라 업체인 올림푸스한국의 방일석 사장은 "컨버전스로 인해 자칫 핵심 기능에 저하 현상이 일어나면 오히려 소비자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카메라 역시 사진이 제일 잘 찍혀야 오랫동안 소비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 원치 않는 과다한 기능 경쟁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 업체들은 카메라 기능을 둘러싸고 과잉 경쟁을 했었다.

휴대폰의 주변 기능에 불과한 카메라가 500만화소,1000만화소라며 소비자의 편의성보다는 제품의 성능만을 강조하기 위한 경쟁을 펼쳤었다. 이 덕분에 휴대폰 가격은 괜히 비싸졌다. 반면 일부 제품은 통화 기능이 떨어지거나 통화하기 불편하게 제작되는 등 본말이 전도되기에 이르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최병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컨버전스(융합) 열풍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IT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복잡한 기능의 제품을 내놓았으나 과잉 컨버전스는 소비자에게 기능 피로감 등 부작용을 촉발할 수 있다"며 "소비자 입장에서 효용을 점검하고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오히려 복잡한 기능의 거품을 빼고 가격을 낮춘 제품들이 잇달아 시판돼 호평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임원기/김정은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