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SMG(Signia Media Group) 대표이사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성공을 기원하며 교육에 힘쓰지만 대다수 부모가 좋은 대학 보내기에만 매달려 자녀의 의견을 듣거나 대화를 나누는 데에는 소홀한 실정이다. 아이의 성향을 무시한 채 부모의 목표대로 이끌려고 하면 아이의 억압당한 기질은 내면에 분노와 화, 두려움, 공포 등 감정의 찌꺼기를 만든다. 아이의 정신적 측면을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일이 장기간 지속되면 아이는 억눌린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며 종종 대형 사고로 연결되기도 한다. 문제는 아이가 내면에 화를 쌓아두고 있어도 부모가 이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부모 자식 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사례는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가령 맞벌이를 하는 주부의 경우 일 때문에 신경이 예민할 때 아이가 물건을 어지럽히거나 하면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큰소리를 내기 쉽다. 부모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과거의 잘못까지 들추면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몰라 반항의 원인이 된다. 몇 번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아이는 엄마와 말도 하지 않으려 든다. 부모는 무심코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고 나서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다. 원칙 없는 부모는 자녀에게 무시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들과 딸의 상반된 ‘화 메커니즘’을 알지 못해 자녀의 반항을 부르는 사례도 있다. 화가 나면 즉시 소리를 지르거나 주먹질을 하는 단순한 화 메커니즘을 가진 남자와 달리 여자는 화를 참았다가 안전한 상황에서 폭발시키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여자의 경우 예부터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는 학습을 받으며 성장했다. 사냥을 나가는 남자에게 화나는 일이 있다고 바로 화를 내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 때문에 여자는 화를 내면에 쌓아두는 일에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내면에 하나 둘 쌓아둔 화는 저절로 소멸되지 않고 언젠가는 한꺼번에 터지게 된다. 따라서 딸이 화를 낼 때는 현재 상황에서 원인을 찾아서는 안 될 때가 많다. 딸이 별것 아닌 일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린다고 면박을 주는 일은 삼가야 한다. 먼저 대화를 통해 딸의 마음을 열어 문제의 원인을 털어놓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즘에는 칭찬이 화두가 되면서 ‘칭찬’으로 아이를 키우려는 부모가 늘었지만, 때로는 잘못된 칭찬이 아이에게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칭찬은 잘 사용하면 아이의 기를 살리고 자신감 있는 아이로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버릇없는 아이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 무례하고 제멋대로인 아이들은 대개 ‘독이 되는 칭찬’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다. 아이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과장된 칭찬이나, 무엇을 칭찬하는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이고 입에 발린 칭찬 등이 바로 독이 되는 칭찬이다. 가령 “너처럼 예쁜 애는 없어”라는 말처럼 잘한 일이 아닌 아이의 외모를 칭찬하거나 막연히 “잘했어”와 같은 추상적 칭찬을 남발하면 안 된다. 아이를 칭찬할 때는 아이가 한 일의 가치를 따져 보고 구체적으로 잘한 일에 대해서만 칭찬해야 한다.

심리적으로 아이는 부모에 대해 한없는 약자다. 약자는 항상 강자의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을 한심한 듯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 하나에도 부모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상처를 입는다. 가끔 아이들이 부모가 생각지 못했던 반항을 하는 것도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의 행동에 반사적으로 반응하기보다 반항의 원인을 살피고 평소 자녀와 대화를 나누는 데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KBS 공채 3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20년간 근무했으며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국제전문가 과정 중 국제관계 및 스피치 이론 3년 과정을 수료,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오랜 기간 아나운서로 근무한 경력을 살려 정치, 경제계의 리더들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자문을 하는 등 국내 최고의 대화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비즈니스 협상, 주주 총회, 사내 커뮤니케이션 향상 교육을 위탁 진행하는 (주)SMG(Signia Media Group)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며 활발한 강의와 집필 활동에 여념이 없다.

주요 저서로는 《돌아서서 후회하지 않는 유쾌한 대화법 78》《부모와 자녀가 꼭 알아야 할 대화법(부모편), (자녀편)》《말 잘하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잔소리하지 않고 유쾌하게 공부시키는 법 60》《한 가지만 알아도 쉽게 풀리는 남녀 대화법》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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