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

한국과 미국 정부는 지난 4월2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을 인터넷을 통해 동시에 공개했다.

국문본과 영문본이 모두 정본인데,협정문은 영문으로 1300페이지,국문으로 1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아직 양국정부가 정식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협정문은 최종본은 아니다.

예정된 정식서명 날짜는 6월30일이다.

이때까지 협정문의 모든 조항들 간의 합치,명료화 작업이 완결돼야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의 홈페이지에 '이번에 공개되는 협정문은 미국의회와 행정부가 합의한 신통상정책을 반영하고 있지 않고,미국은 신통상정책을 어떻게 협정문에 담을지 논의 중'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서명 이전에 미국의 재협상요구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협상단 간의 협상타결,양국 정부의 서명으로 협정체결,그리고 양국 국회에서의 비준 동의를 거쳐야 협정이 공식 발효되기 때문에 한·미FTA는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협정문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반대진영에서 제기해온 이면합의 의혹은 접어도 될 듯하다. 또 협상결과를 발표했던 84페이지 분량의 정부자료에 근거해 '그런대로 균형을 맞춘 괜찮은 협상결과'란 평가의 근간을 흔들 만한 새로운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반대진영은 △세이프가드 발동횟수가 1회에 국한한다 △부동산,조세정책이 투자자-국가소송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사태 때 외화유출을 통제하는 금융세이프가드를 도입할 수 있다고 하지만 1년에 한정된다 △반덤핑 조항관련 협정을 미국이 위반해도 양국간 분쟁절차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들은 독소조항이고,때문에 한·미 FTA는 심각한 결함을 가진 협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본질과 부수적인 것을 혼동하면 곤란하다.

FTA협상은 서로 시장을 개방하고 경쟁을 촉진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관세뿐만 아니라 비관세장벽까지도 완화하고 폐지하는 일정을 제시하는 것이 협상의 목표다.

세이프가드는 아무 때나 발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으로부터 수입이 급증해 국내산업에 심각한 피해 또는 위협이 있는 경우에,이러한 인과관계를 입증해야만 도입할 수 있다.

세이프가드가 자유화의 기본취지에 위배되지만,정치적인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최후의 타협안이기 때문에 그 발동요건은 당연히 까다롭고 그 기한도 일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한번만 세이프가드를 허용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것일 수 있다.

관세철폐 최장기간이 10년이고,세이프가드는 처음 2년,그리고 추가 1년임을 고려한다면 빈번한 세이프가드 도입은 FTA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높다.

반대론자들은 지식재산권이 강화돼 국내포털사이트가 폐쇄될 위기에 처해 이용자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된다고 한다.

이러한 시각은 자못 흥미롭다.

반대진영 사람들은 농산물이나 공산품 논의 때는 국내 생산자 이익 침해를 걱정할 뿐,높은 관세와 각종 비관세 장벽으로 인한 국내소비자의 희생을 외면할 때는 언제고,지식재산권이 강화되면 이용자 권리 침해를 고민하고,의약품을 이야기할라치면 국내제약산업의 몰락을 걱정한다.

지식기반경제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요소의 하나로 지식재산권 강화를 생각하지 않고,생산자의 창조동기는 뒷전으로 물러난다.

신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의 건강권에는 무관심하다.

반대논리에서 협상결과를 하나의 일관된 잣대로 평가하는 논리적 일관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이들은 협상분야마다 피해를 볼 것 같은 계층만 찾아내기에 분주하다.

물론 한·미 FTA 협정문이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서로가 주고받아야 타협이 이뤄지는 협상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면,조금은 불만스러워야 합의에 이르지 않을까.

한국이 비관세장벽을 완화시킨 건 미국이 요구해서이기도 하지만,개방과 개혁으로 나가려는 한국의 의지를 과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면합의,졸속합의,독소조항 논란은 이제 접고 협상을 한국과 미국의 입장에서 균형되게 평가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도 이런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