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을 가만히 보면 이들 중에 내 소설의 주인공이 있을 것만 같아요. 리진도 그 중에 있겠죠."

28일 서울 서대문 근처 식당에서 열린 소설가 신경숙씨의 장편 '리진'출간 기자간담회.그는 6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이라며 무척 상기돼 있었다.

"'겨울우화'로 문예중앙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았을 때 만큼이나 기대와 걱정이 돼요."

사실 그가 설레는 것은 이번 소설이 역사 속의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한'처녀작'이기 때문이다.

'리진'은 개화기 때 조선에 와 있던 프랑스 공사의 눈에 들어 함께 프랑스로 건너간 궁중 무희 리진의 이야기다.

리진은 봉건사회 속에서 근대적인 문물을 접할 기회를 가졌지만 끝내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자살한 여인.

신씨는 4년 전 한 지인에게서 받은 A4 한 장 반짜리 번역본을 보고 이 작품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종이 속에 갇힌 여인을 세상 밖으로 꺼내주고 싶다는 바람이 가장 컸죠."

그는 이 작품을 역사소설이 아닌 현대소설로 봐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배경은 100년 전이지만 정체성을 찾으려고 애쓴 한 여인의 노력이 현대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소설의 느낌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주석(註釋)을 달지 않았다.

대신 서너 줄 더 읽어보면 모르는 단어도 이해될 수 있도록 배려했고 문체도 고어투를 피했다.

그렇다고 리진이 살던 시대의 사건들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리진과 주변 인물들이 역사적 사실에서 겉돌지 않도록 하는 과정이 힘들었습니다. 공부를 해가며 작업하다 보니 다른 작품을 쓸 때보다 공력이 세 배는 더 들어간 것 같아요."

리진의 발자취를 찾아 프랑스로 건너갔지만 역사적 흔적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어 7~8개월간의 작업에서 손을 뗀 적도 있다.

그래도 그가 4년간의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리진'에 대한 끝없는 사랑 덕분이었다.

"리진에 대한 애정이 깊다 보니 다른 캐릭터와의 균형이 흐트러질까봐 걱정할 정도였죠."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