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仁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가 제안한 개념 중에 '맥도날드화'(MacDonaldization)란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서가 나와 있는데,옮긴이는 책의 부제로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란 의미심장한 질문을 달아 놓았다.

'맥도날드화'란 개념 속엔 몇 가지 다중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

첫째는 맥도날드가 세계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브랜드라는 사실이 대변하는 바,글로벌라이제이션 하에서는 '브랜드=막강한 파워'라는 것이다.

맥도날드가 상징하는 노랑색 M자는 익숙하고 친숙한 이미지에 더하여,'가장 미국적인 상징'으로서의 패스트푸드 대표 브랜드로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맥도날드의 브랜드 가치가 천문학적 수치를 기록한다지 않던가.

우리도 점차 브랜드 파워의 영향력을 체감하기 시작한 상황에서,최근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10명 가운데 8명이 '삼성'을 일본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타났음은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차제에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파워들 각각의 실상과 허상을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세계인을 상대로 정확한 자리매김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맥도날드화가 상징하는 두 번째 의미로는 생산 과정의 엄격한 표준화로 인한 결과의 '예측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실제로 맥도날드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동일한 맛을 내기 위해 빵 재료에서부터 감자튀김 온도에 이르기까지 생산 공정 전반에 걸쳐 철저한 표준화 작업을 시행해가고 있다 한다.

불확실성·가변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예측 가능성 및 확실성은 미덕의 하나로 간주된다.

일례로 세계 도처의 관광객들은 맥도날드의 M자를 만나는 순간 '저 곳에 가면 내가 알고 있는 맛의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의 미소를 짓게 된다는 것이다.

물설고 낯선 곳에서 이국적 풍취에 빠져보기도 하지만,생전 처음 맛보는 음식 때문에 남몰래 마음고생하던 이들에겐 맥도날드의 등장이 그럴 수 없이 반가우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맥도날드화 덕분인가,우리네 일상의 소비생활을 곰곰 들여다보면 의식주 전반에 걸쳐 프랜차이즈가 성행하고 있고,원조를 앞세운 브랜드명의 지점이 성업 중이다.

대신, 장인(匠人) 정신 듬뿍 배어나는 작품은 소수의 전유물로 화해 가고,대대로 손끝에서 우러나오는 고유한 맛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은 왠지 아쉽기만 하다.

맥도날드화가 전달(傳達)하려는바 세 번째 의미는,'패스트푸드'란 표현에 담겨 있듯 생활의 속도에 가속(加速)이 붙고 있음을 뜻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선 편안하게 앉아 점심을 즐길 수 있는 안락의자를 기대하긴 어렵다.

딱딱하고 좁은 데다 불편하기까지 한 의자야말로 '빨리 먹고 나가서 볼일을 보라'는 메시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는 장치가 아닐는지.

실제로 최근 맥도날드에서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지점은 '드라이브 인'(자동차를 탄 채 주문한 것을 받아 가는)이라고 하니,가장 기본적인 먹는 일조차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하는 현대인의 슬픈 단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바쁘다 바빠'를 외칠수록 지위가 높음을 상징하고 삶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지고 있음에 대한 반동으로 '슬로 푸드''느리게 살기''웰빙 생활양식'을 옹호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전반적 흐름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다.

'맥도날드화'란 개념으로 우리네 삶을 포착하고 보니,진정 이것이 유토피아를 향한 여정인지 디스토피아로 가는 길목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래도 멀미를 일으킬 만큼 급박(急迫)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가끔은 멈추어 서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그려보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건,낡은 세대의 관성 내지 자기 합리화만은 아니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