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시중은행에 저신용층을 위한 소액 신용대출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한 것은 불법 고리사채 횡행으로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는 서민금융시장을 정상화하려는 의지로 평가할 수 있다.

은행 카드사 등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저신용자들이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대부업체보다 낮은 금리로 급전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터주자는 취지다.

특히 연간 13조원 이상의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국내은행들이 공익활동의 일환으로 금융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그러나 은행 관계자들은 "자회사를 통해 저신용층을 상대로 한 고금리 대출영업을 하려면 은행이 서민을 상대로 돈 장사를 한다는 부정적 시각이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 진출시 대출금리 하락 기대

사실 금융감독당국 입장에서 단기,소액,무담보 대출을 특징으로 하는 대부시장(서민금융)은 '계륵' 같은 존재다.

국민정서를 고려하면 연 60%가 넘는 고금리를 받는 대부업체의 대출 행태를 장려할 수 없고,그렇다고 막을 수도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대부시장을 억누르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결국 대부업체보다 더 높은 사채이자를 쓸 수밖에 없다.

대부업체(무등록 업체 포함)에서 급전을 빌려 쓰는 저신용자들이 매년 증가하는 상황에서 은행 주도로 시장을 양성화할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대부시장은 고리사채 성격도 있지만 억누른다고 되는 게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서민금융시장으로 봐야 한다"며 "은행을 비롯해 제도권 금융회사들이 저신용층에 대한 소액신용대출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찬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도권 금융회사가 이 시장에 진출하면 대부업체의 고금리 문제점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부시장이 경쟁체제로 전환돼 현재 60%대의 금리가 20~40%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외국계 독식으로 국부유출 우려

날로 팽창하고 있는 대부시장은 일본 미국 등 외국계가 주도하고 있다.

러시앤 캐시로 유명한 일본계 아프로금융은 연간 1000억원에 가까운 이익을 올린다.

이 같은 시장을 감안해 씨티은행 메릴린치 스탠다드차타드 등 세계 굴지의 금융그룹들도 앞다퉈 한국 대부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외국계 업체가 돈을 벌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국내 신용정보가 해외로 고스란히 넘어가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금감위 관계자는 "지금 이대로 가다간 서민금융을 외국자본에 그대로 넘겨주는 꼴"이라며 "국부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본력이 튼튼한 국내은행의 서민금융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외국계 대형 대부업체가 큰 수익을 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체계적인 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하면 과거와는 달리 소액신용대출이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크다"며 "제도권 금융회사들이 서민금융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 '평판 리스크' 해소 관건

시중은행들이 그동안 고금리 소액신용 대출 시장을 철저히 무시한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가 아니다.

"은행이 고리대금업까지 하느냐"는 비난에 따른 평판 리스크(reputation risk)를 걱정해서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는 고금리 신용대출을 할 수 있는 신한캐피탈과 하나캐피탈을 자회사로 두고 있지만 이미지 손상 우려 때문에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은 거의 취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위 관계자는 "명분 때문에 실리를 놓칠 수 없다"며 "은행이 직접 나서지 않고 캐피털 할부금융회사 등을 별도 자회사로 설립하면 평판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씨티은행(씨티파이낸셜) SC제일은행(한국PF금융) 등 외국계 은행들은 관계회사를 통해 대부업체와 같은 고금리 소액대출을 하고 있다.

이우정 골든브릿지 부회장은 "자본력이 튼튼한 국내 은행들이 평판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금융회사와 금융 소외계층을 위해 무엇이 올바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며 "은행의 고금리 소액대출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인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신용층에 대한 고금리 대출을 서민들의 고혈을 짜는 고리대금업으로 간주하지 말고 소비자금융으로 봐야 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장진모/정인설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