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얍!" "태권!"

지난달 29일 오전 10시께 남산 자락에 위치한 남산타운 아파트 내 상가.

건물 2층 입구에 들어서자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가 흘러 나왔다.

복도 가운데 있는 '남산체육관' 문을 열자 십수명의 여성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권 찌르기를 하는 주먹에는 힘이 넘쳤고, 발차기를 하는 발끝에는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다.

태권도 수련에 참가하는 수강생들은 모두 여성으로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은 다양했다.

흰색의 태권도 도복을 입고 날렵하게 발차기를 하는 수련생들의 절반가량이 외국 여성들인 게 특히 눈길을 끌었다.

9시반부터 시작된 운동은 정확히 한 시간을 채우고 10시반이 조금 지나 끝났다. 수련하는 모습을 옆에서 30여분간 지켜보니 체력이 약한 남자들은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강도 높게 진행됐다.



팔굽혀펴기,윗몸 일으키기 등 기초 체력 훈련부터 태권도 기본 자세, 대련에 이르기까지 숨돌릴 틈이 없었다.

한 시간여의 운동을 마치고 땀으로 뒤범벅이 된 외국인들을 붙들고 소감을 물어 봤다. "지금 기분이요? 정말 좋죠. 몸과 마음이 상쾌합니다."

샤워를 하려고 막 체육관을 빠져 나가려던 3명의 외국인 여성들은 입을 모아 "한 시간 동안 정신 없이 수련을 하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날아갈 것 같이 개운하다"며 '태권도 예찬론'을 늘어 놓았다.

세 명 중에서 급수가 가장 높은 수련생은 주한 호주 부대사의 부인인 조안 스털링(Joanne Stirling)으로 올해 초 빨간띠를 땄다.

2년 전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조안씨는 시드니에 살 때부터 태권도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이 있어 한번 배워보고 싶었으나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국에 오자마자 집 근처에 태권도 도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등록한 뒤 1년 전부터 빠지지 않고 주 5일씩 운동을 하고 있다.

나이키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1년 전 한국을 찾은 영국 출신의 캐롤린 셸던앨렌(Carolyn Sheldon-Allen)은 작년 말 시작했지만 태권도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캐나다에서 온 바바라 스톡맨(BarBara Stockman)도 연초 가장 늦게 입회했으나 부지런히 배우고 있다.

이번이 한국 거주 두 번째인 캐로린은 "태권도를 하면 심신수양이 되기 때문에 다이어트 효과는 물론 자칫 외국 생활에서 생기기 쉬운 '마음의 병'을 막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조안은 "외국인 입장에서 이웃 사람을 사귀기가 쉽지 않은데 도장에서 매일 한 시간씩 함께 운동을 하다보면 한국인 동료들과 가족처럼 가까워진다"면서 "태권도를 통해 한국의 전통과 한국인의 내면세계를 많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남산 체육관에 외국인들이 많은 것은 도장을 운영하는 이호철 사범의 캐나다 근무가 인연이 됐다.

이 사범이 캐나다에서 태권도 사범을 할 때 다니던 외교관의 부인이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뒤 다시 태권도를 배우면서 외국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현재 남산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외국인은 10여명에 달한다. 이들 외국인은 언어 문제가 있어 태권도에 입문한 후 기초를 익히기까지 다소 시간은 걸리지만 배우려는 열정은 대단하다는 게 이 사범의 설명이다.

캐나다에서 2년간 사범 생활을 한 적이 있는 이 사범은 "태권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이 의외로 많다"면서 "외국인들은 정말 운동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생활에 대한 감상을 묻자 3인 모두 "한국인은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며 외국인들에게 매우 친절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에서도 살아봤다는 캐로린은 "일본인들도 친절하긴 하지만 실제 속마음을 알기가 어려워 늘 벽을 느꼈지만 도장에서 같이 운동하는 동료들과는 정말 흉허물이 없다"고 자랑했다.

이들 3인의 향후 목표는 검은띠를 따는 일이다.

올 하반기에 남편의 임기 만료로 귀국하는 조안은 "호주에 돌아가서도 태권도 도장에 계속 다녀 금년 중 검은띠를 따고 싶다"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