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이 9년7개월 만의 최저치인 100엔당 760.49원에 마감됐다.

전문가들은 760원 선 붕괴도 시간 문제인 것으로 보고 있어 대일 수출 기업에 초비상이 걸렸다.

2004년 10월 100엔당 1050원이었던 환율이 2년 반 만에 760원대로 곤두박질치면서 가격 경쟁력이 27%가량 하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소비자 물가가 6.3% 오른 반면 일본은 오히려 1.5% 하락한 점을 반영하면 실질 원·엔 환율 하락폭은 무려 32%에 달한다.

이처럼 원·엔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자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날 산업자원부 주최로 열린 민·관 합동 수출대책회의에서 수출업체들은 "원·엔 환율 하락으로 채산성 악화가 심각해 수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외환당국은 강력한 환율 안정 대책을 펴야 한다"고 건의했다.

원·엔 환율이 9년7개월 만에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친 이날 경상남도 창원에서 자동차 부품용 프레스 금형을 생산하는 ㈜두손 최진석 회장은 "올 것이 왔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손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뚫는 데 성공,매년 안정적인 물량을 납품했다.

이 때문에 매출은 꾸준히 올라갔고 2004년에는 40억원을 넘어섰다.

도요타뿐 아니라 GM 메르세데스벤츠 등 미국과 유럽에서도 오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2005년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100엔에 1050원이던 원·엔 환율이 900원과 800원 선 밑으로 고꾸라지면서 어느 새 두손이 만드는 금형이 일본산보다 비싼 제품이 됐기 때문이다.

2004년 1300만엔 정도 받던 대시 패널 금형을 손해 보지 않고 팔려면 이제 2000만엔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그렇다고 1900만엔 정도에 판매되는 일본산보다 가격을 낮추자니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최 회장은 "금형 사업은 거의 포기했고 도요타 직원들을 안내하기 위해 차렸던 여행사가 이젠 주업이 됐다"고 말했다.

원·엔 환율 급락 여파로 일본 수출을 사실상 포기하는 중소기업은 두손만이 아니다.

치간 칫솔을 생산하는 '신기술'은 일본 업체들이 값비싼 한국산 대신 베트남 및 중국으로 거래선을 돌리면서 일본 수출액이 작년 초 월 1억4000만원에서 현재 700만원대로 급감했다.

컬러TV 부품 수출업체인 B사는 최근 일본 업체가 입찰에 부친 80만달러짜리 계약에서 개당 2000엔 차이로 대만 업체가 수주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원고.엔저 쇼크는 특히 중소기업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KOTRA가 최근 일본 수출 중소기업 7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8.4%가 지난해 대일 수출이 평균 31.5%가량 감소했다고 답했으며 현재 환율이 지속될 경우 83.8%는 올해 수출이 작년보다도 28.4%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현해탄 건너 일본 금형업체들은 원고·엔저 현상으로 휘파람을 불고 있다.

도쿄에서 60km 떨어진 야마모토제작소는 밀려드는 일감으로 5년 만에 처음 잔업을 늘리고 클러치 생산 능력을 월 400만개에서 500만개로 확대하는 등 한동안 한국 기업에 내줬던 물량을 되돌려 받고 있다.

도쿄전력과 시미즈건설 IHI 등 대기업들도 한국에서 조달하던 물품을 중국산 및 일본산으로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도쿄=남궁 덕/창원=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