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의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고시원 투숙객이 사망했다면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손해배상책임이 있을까.

2005년 12월 새벽 서울 마포구 소재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건물의 지하에 위치한 H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건물 4층에는 건물주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고 이 화재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던 최모씨(27)가 사망했다.

당시 고시원에는 간이 스프링클러나 화재경보기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목재 비상구 문도 잠겨 있었다.

대신 외부인의 무단 출입이 가능하도록 주 출입구는 개방돼 있었던 데다 야간 관리를 맡은 고시원 총무는 잠을 자고 있었다.

최씨의 부모 등 유가족은 고시원 건물주와 고시원 운영자를 상대로 사망한 최씨와 자신들을 위한 손해배상금을 요구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최근 고시원 운영자는 사망한 최씨의 실수입 및 장래수입을 바탕으로 최씨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부모에게는 손해배상액 5400여만원 및 장례비 60만원과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최씨가 고시원 내부 구조 등을 잘 알고 있었고 화재 직후 전화통화를 할 만큼 의식이 있었으나 적극적으로 대피하려는 흔적이 없었던 점 등을 들어 고시원 운영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전체의 20%로 제한했다.

법원은 그러나 고시원 건물주에게는 중과실이 없다며 책임을 묻지 않았다.

최광석 변호사는 "당시 150㎡ 이하 면적의 지하 고시원의 경우 스프링클러 등의 설치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었고 사건의 실체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시원 운영자 측이 투숙객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확인했다는 데 이번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