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여러분,마음껏 도발하십시오.미래는 저지르는 자의 것입니다."

'미래쇼크' '제3의 물결'로 유명한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79)는 4일 오전 서울 보성고등학교 대강당에서 300여명의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는 원래 급진적(radical)"이라며 "누가 뭐라 하든 끝까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밀어붙이는 '뚝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등학생들을 만난 토플러는 사회운동을 벌이다 아내인 하이디 토플러를 만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1948년 대통령 선거 시즌이었어요.

그때 19세의 뉴욕대 학생이었죠.1940년대까지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 이외에 인종 차별을 주도하는 제3당이 남부를 중심으로 득세하고 있었어요.

백인이 아니면 학교나 사회에 발붙이지 못했죠. 나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캠페인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 남부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인연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분위기가 고조되자 토플러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방법이 있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며 본론을 꺼냈다.

그는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예로 들었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꿈이었던 토플러는 고등학교 신문의 학생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새롭게 전학간 학교는 토플러가 언론과목을 수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 신문사에 넣어줄 수 없다고 거부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토플러는 "정식 기자로 받아줄 수 없다면 만화라도 그리겠다"고 우겼다.

결국 신문사에 들어간 토플러는 이듬해 편집국장의 자리에 올랐다.

대학 졸업 후 토플러는 작가의 꿈을 키웠다.

토플러의 작가수업은 보통사람과는 달랐다.

"대졸자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 공장에서 일했어요.

존경하는 작가인 '존 스타인벡'처럼 살고 싶었던 거죠."

그는 일용직 근로자들과 직접 일한 경험을 소재로 '분노의 포도'를 집필한 존 스타인벡을 따라 부인인 하이디 토플러와 함께 공장 일을 한 경험을 설명했다.

토플러는 이 같은 다양한 경험이 나중에 '미래 쇼크' 등 미래학 서적을 쓰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토플러의 강의에 이어진 질문 시간.박병률 학생(2학년)은 정보 시대에 유망한 직업과 학과를 물었다.

그는 "각자의 적성에 따라 다를 것"이라며 "분명한 것은 근육이 아닌 머리를 쓰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상상력이 중요하다"며 "당장 눈앞에 있는 직업보다는 10~20년 후에 유망할 직업을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이날 강연에 참가한 김석중 학생(17)은 "호텔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며 "강의를 들은 후 다소 과격해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확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 창의적인 '호텔리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토플러가 강연 장소로 보성고를 택한 것은 역사가 깊기 때문이다.

토플러는 한국 방문 일정을 짤 때 역사가 오래된 고등학교에서 강연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보성고는 올해로 101주년을 맞았다.

한편 토플러는 이날 오후 서강대에서 열린 대학생들과의 대담에도 참여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국 등 주요 국가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교육 제도가 불필요하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폈다.

토플러는 "소품종 대량 생산이 기본인 산업화 시대에 빠른 시간에 근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꼭 배워야 하는 것'만 따로 떼어 가르치는 공교육 제도가 만들어졌다"며 "지금은 머리로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인 만큼 획일적인 등교시간과 숙제 커리큘럼을 강요하는 기존의 교육제도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의 지식을 가져다 놓고 틀린 점을 찾아내는 방식의 교육이 오히려 더 현재의 상황에 적합하다"며 "노벨상 수상자들이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토플러는 한국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지식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능한 나라"라고 답했다.

그는 최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예로 들며 "과거의 한국은 할리우드 영화에 점령당한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해외로 영화 콘텐츠를 수출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발돋움했다"고 말했다.

성선화/이태훈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