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민소환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제도가 시행된 지 10여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지자체와 갈등을 빚어온 사회단체,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주민들,심지어 인사 불만을 가진 공무원들까지 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에 나서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부패·비리·무능 단체장을 퇴출시키겠다는 원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소신행정 발목 잡기로 행정 공백만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이미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이해관계자들의 갈등

경남 진주의 일부 시민단체들은 김태호 경남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공공기관 3곳의 마산 이전을 불허하고 원안대로 12곳의 진주 이전을 확정한 데 대해 김 지사가 이를 거부한 것이 이유다.

경남도는 지난 4월 말 정부가 확정한 진주 일괄 이전 계획을 거부하며 경남도 균형 개발 차원에서 대한주택공사와 주택관리공단,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등 공공기관 3곳의 마산 이전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기존 혁신도시 입주 예정지인 경남 진주 시민들은 "경남도가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을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박광태 광주시장이 소환 대상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내년 8월 2만7000여가구가 입주할 예정인 수완지구에 학교용지 부담금의 절반인 456억원을 조달해야 하지만 현재 45억원밖에 확보하지 못하자 이곳 입주민들과 사회단체들이 박 시장을 압박했다.

김두겸 울산남구청장은 친환경 무료 급식을 외면하고 있다는 이유로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 울산연대'란 시민단체에 의해 주민투표 소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 청장은 "남구지역에 180개 사회단체가 있는데 이들 단체마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예산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주민소환을 한다면 행정이 되겠느냐"면서 "부유층과 저소득층 관계없이 전면 급식 지원을 하자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공무원들의 인사 불만

울산시 공무원 노조는 엄창섭 울주군수를 주민소환 대상에 올려놓고 있다.

"엄 군수가 울산시와 통합 관리하도록 돼 있는 인사원칙을 깨고 보건직과 기술직까지 자체 승진시켜 다른 구청과의 형평성을 무너뜨렸다"(박상조 울산시 공무원노조위원장)는 이유다.

엄 군수 등 울산시 산하 5개 구·군 단체장들은 "울주군에서 인사위원회를 거쳐 단행한 인사를 놓고 해당 지역 주민도 아닌 울산시공무원노조가 주민소환 운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울주군과 울주군 직장협의회는 7일 기자회견을 갖고 울산시 인사도 문제가 있다며 박맹우 울산시장의 소환을 거론키로 하는 등 울산시와 일선군 공무원들 간의 인사 갈등이 '단체장 소환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혐오시설 반대


내집 앞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주민소환을 제기하는 곳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도 하남시.'광역화장장 유치반대 대책위원회'는 지난달 주민소환법이 발효되자마자 화장장 유치를 추진 중인 김황식 시장에 대해 주민소환을 추진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그린벨트에 추모공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홍건표 부천시장도 주민소환 대상에 오르고 있다.

행정 전문가들은 "외유성 해외 연수를 떠나거나 비리를 저지르는 단체장을 주민소환을 통해 퇴출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정책 방향이 자신들과 맞지 않는다고 관련 단체장을 소환한다면 남아있을 단체장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걱정했다.

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주민소환제=부패·비리·무능력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을 주민투표로 임기 전 퇴출시킬 수 있는 제도.지난 5월25일 발효됐다.

주민소환제는 '청구'와 '투표' 등 2단계 절차를 거쳐 이뤄진다.

투표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광역 시·도지사에 대해서는 총 투표권자의 10%,기초 시장·군수·구청장에 대해서는 15%,광역 및 기초 의원에 대해서는 20% 이상이 서명해야 한다.

이 같은 청구 절차를 거쳐 '투표'가 실시될 경우 투표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고 유효투표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대상자는 직위를 상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