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닭이 홰치는 소리가 끊긴 지 한참인데,아침해는 여전히 산너머에 대기 중이다.
새벽 댓바람부터 들러붙는 우기(雨期)의 이 후텁지근한 열기와 습기에 지친 탓일까.
하늘 낮게 걸린 잿빛 구름도 흠뻑 젖어 우중충하다.
어스름에 갇힌 도시,아니 마을 한복판 산티빌라 앞의 '왕의 대로'는 적막강산이다.
홀연 나타난 신문배달원의 자전거 체인 소리가 선명하다.
담장없이 길가로 낸 문 틈으로 신문지를 밀어넣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현대차 마크가 뚜렷한 흰색 중고 포터가 휑하니 사라지며 남겨놓은 엔진소음은 한바탕 작은 소동을 방불케 한다.
대로 중간 사거리 모퉁이의 허름한 경찰서와 유치원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드는 사람들이 어둑서니 보인다.
양끝에 소쿠리를 매단 장대지게를 한쪽 어깨에 메거나,둥근 채반 같이 생긴 그릇을 옆구리에 걸친 여인네들이다.
노변턱 길바닥에 내려진 소쿠리에는 여러가지 먹을거리들이 담겨 있다.
뚜껑달린 작은 대나무함의 찹쌀 고두밥과 바나나 잎에 싸 쪄낸 찹쌀밥 옆에 사각 찹쌀떡과 바나나가 가지런하다.
고깔모양으로 꼬아올린 바나나 잎에 노란 꽃을 두른 장식물도 보인다.
꾀죄죄한 아이들의 손에도 바나나와 찹쌀떡이 한움큼씩 들려 있다.
모두들 팔려고 가져나온 게 틀림없는데 꼭 팔겠다는 의지는 없는 것 같다.
눈을 한번 맞추고 소쿠리쪽을 본 뒤 다시 한번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다.
말없이 손으로 바나나를 집어들어 내미는 여인네들이 그나마 적극적인 편이다.
더위에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웃통을 벗은 채 집 앞 앉은뱅이 의자에 걸터앉은 노인네의 초점없는 시선이 이 모든 감정선에 맞닿아 있다.
대로변의 적막감은 관광객을 실은 미니버스의 엔진소음과 헤드라이트 불빛에 깨진다.
한무리의 관광객이 미니버스에서 내려 유치원 앞 보도에 펼쳐진 깔개 위의 가지런한 공양함 앞에 무릎을 꿇는다.
공양함의 찹쌀밥에 더해 바나나며 떡을 사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멀리 대로변 사원입구에 삼삼오오 모인 승려들의 주황색 가사가 도드라져 보인다.
이 곳 라오스 루앙 프라방을 상징하는 새벽 탁발(托鉢)행렬이 드디어 시작될 참이다.
대로 아래쪽에 모인 각 사원의 승려들은 서로의 노승을 선두로 한줄을 이루어 좌정한 시주들에게 다가선다.
모두가 맨발임에도 내딛는 발걸음에 주저함이 없다.
아무렇게나 두른 듯한 주황색 가사 행렬은 오래된 흑백사진의 한부분에만 색깔을 입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승려들은 시주들을 지나치며 어깨 줄로 늘어뜨린 바리때 뚜껑만 반쯤 열었다 닫는다.
시주들은 무릎을 꿇은 채로 또는 무릎으로 엉거주춤 일어서서 공양함의 고들고들한 찹쌀밥을 손으로 떼어 조금씩 보시한다.
미리 준비한 찹쌀떡이나 바나나를 눈앞에 열린 바리때에 넣어주기도 한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승려들은 머리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혀 답례하는 일없이 다음 또 다음 시주를 향해 빠르게 지나친다.
승려 수백명의 행렬이지만 전혀 소란스럽지 않다.
맨발이어서 신발이 끌리는 소리가 날 리 없고,가볍게 다문 입에서도 말소리가 새지 않는다.
관광객이 누르는 카메라의 셔터소리,발걸음에 가사자락 흔들리는 소리,그리고 시주들의 입안에서 맴도는 진언소리가 전부다.
승려들은 여러 시주로부터 공양받지만 바리때를 가득 채우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아침과 점심 하루 두끼 발우공양에 넘친다고 생각하는 공양물은 시주들 끝자리에 쭈그린 채 채반을 머리 위로 받쳐들고 있는 걸인에게 던져준다.
탁발행렬은 이렇게 대로를 기점으로 한 마을 중심부를 바람처럼 한 바퀴 돈다.
대로 뒤편 길에서는 일찍부터 의관을 정제한 마을 주민들이 탁발행렬을 기다린다.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40여분간 이어지는 새벽 탁발행렬의 분위기는 루앙 프라방의 정서를 지배한다.
루앙 프라방은 라오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하지만 전체 인구라고 해야 4만명,메콩강과 남칸강으로 한쪽이 둘러싸인 시내 중심의 상주인구도 8000명 남짓한 시골마을이다.
'툭툭'이나 '삼론'같은 오토바이택시와 소형트럭의 엔진소음을 빼면 소란스러울 것이 없다.
우리돈으로 500원을 내고 편 자리에 생화가 박힌 종이등,실크 숄 등의 기념품을 내놓고 파는 야시장,망고스틴 같은 열대과일에 도마뱀 앞다리 고기까지 온갖 숲 속 산물의 전시장인 아침시장의 분위기도 차분한 편이다.
마사지숍과 카페 등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늘어서 있는 대로변의 한낮 분위기도 비슷하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역시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심하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악다구니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팔꿈치를 꺾어올려 손바닥을 내보이는 형태의 이 곳 부처입상이 의미하는 대로 '다투지 말고 평화로이,베풀고 만족하며 사는' 생활철학이 몸에 배인 것 같다.
그래서 배낭여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대개의 배낭여행객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더위에 지치면 카페에 들러 차가운 '비어 라오'로 목을 축인다.
맛있는 피자 한 판을 요깃거리로 더해도 우리돈으로 1000원짜리 몇장이면 충분하다.
바쁠 것 없고,내일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투의 사람들 표정을 마주하면 서울 출발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떼놓지 못했던 갖가지 걱정거리들이 하찮게 여겨진다.
일,돈,명예,애들 성적 같은 우리사회에서 중요시되는 것들 말이다.
새벽 탁발행렬 외의 구경거리도 꽤 많다.
루앙 프라방의 랜드마크격인 푸시산 전망대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328개 계단 끝의 전망포인트에 1804년 세워진 탓 촘시탑이 있다.
시내 전경이 한눈에 잡힌다.
합류하는 두 강과 푸른 숲,그 사이의 사원과 붉은색 낮은 지붕의 식민지풍 건물 풍경 그 자체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역임을 실감케 한다.
석가모니의 발자국(?)도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옛왕궁은 '프라방' 황금불상을 모시고 있다.
53kg 무게의 프라방 황금불상에서 이 곳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이 황금불상만을 위한 사원을 따로 짓고 있다.
박물관 안에 들어가면 옛 왕가의 생활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왕이 각국 정상들로부터 받은 선물들도 눈길을 끈다.
사원으로는 왓솅통 사원이 으뜸이다.
라오스 사원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왓솅통 사원은 이 일대 63개 사원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원으로도 손꼽힌다.
사원의 세겹 지붕이 특이하고 벽면 장식도 아름답다.
꿇어 앉아 기원한 뒤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리면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묵직한 청동불상의 전각에 젊은 연인들이 몰린다.
왕실 장례용 황금마차도 있다.
공산화되기 전까지 왕실 장례 때 쓴 운구용 마차로 그 장식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왕은 죽어서도 남과 다른 족속이란 뜻일까.
시신을 세워서 운구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메콩강 크루즈를 해볼 만하다.
시원한 강바람이 더위를 씻어준다.
4000여개의 불상이 꽉 들어찬 강변의 팍 우 동굴에서 한 번 쉰다.
동굴의 기원은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티사랏이란 왕자가 치앙마이 공주와 백년가약을 맺고 메콩강을 거슬러 돌아오다 이 동굴을 발견한 뒤로 성역화됐다고 한다.
동굴안 불상들은 지난 400년간 주민들이 1년에 한 개씩 모셔온 것이라고 한다.
팍 우 동굴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또 하나의 깊은 동굴이 나온다.
동굴 앞을 지키고 있는 배불뚝이 스님동상이 눈에 띈다.
켓차이란 인도스님이란다.
켓차이 스님은 너무 잘생겨 여자가 많이 꼬였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수행이 어렵겠다며 절을 떠나거나 몸을 바꾸라고 했단다.
스님이 하산할 수 없다고 하자,부처가 신성한 나무로 머리를 누르니 배가 튀어나와 못생겨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팍 우 동굴에 이어 들르는 상하이 마을은 라오스 전통 소주를 만드는 마을. 찹쌀소주와 함께 정력에 좋다는 독사주 등 라오스 전통주에 얽힌 재미난 얘깃거리가 넘친다.
루앙 프라방(라오스)=글ㆍ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루앙 프라방ㆍ방비엥ㆍ비엔티안ㆍ하롱베이 4박6일' 64만9천원부터
라오스의 정식 국명은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다.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중국 등 5개국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가다.
수도는 비엔티안.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1.1배,인구는 540만명으로 동남아 국가 중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
국민 대다수가 (소승)불교를 믿는다.
언어는 태국어와 비슷해 태국어를 할 줄 알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열대몬순 기후특성을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26.5도,연평균 강수량은 2045mm. 우기인 5~9월은 아주 덥고 하루에도 여러 차례 스콜이 내린다.
건기인 10~4월이 여행하기에 더 좋다.
시차는 2시간. 한국보다 늦다.
통화 단위는 킵. 요즘 환율은 1달러에 1만킵 안팎. 우리돈 가치의 10분의 1이라고 생각하면 계산하기 쉽다.
현지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인 비자발급료는 30달러. 사진 1장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라오스까지 직항편은 없다.
보통 베트남항공으로 하노이를 경유해 들어간다.
베트남항공(02-757-8920)은 인천~하노이,인천~호찌민 직항편을 매일 운항한다.
부산에서도 하노이(월ㆍ화ㆍ목ㆍ토요일,대한항공 편명공유),호찌민(매일)행 직항편을 탈 수 있다.
8월2일부터는 매주 월ㆍ목ㆍ토요일 부산출발 하노이행 비행기를 직접 띄울 예정이다.
하노이에서 비엔티안과 루앙 프라방 연결편을 쉬 갈아탈 수 있다.
비행시간은 인천~하노이 4시간30분,하노이~루앙 프라방 1시간20분.
루앙 프라방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요즘은 1박에 10~15달러. 산티 빌라,앙사나리조트,라 레지당스 등 고급 리조트호텔도 있다.
유럽식 아침식사는 3000원이면 충분하고,세트화된 왕실 전통만찬은 13~15달러에 맛볼 수 있다.
탁발공양체험은 3달러.
트랜스아시아투어(02-730-3008),우리에이전시(02-775-7666),굿모닝베트남(02-739-6153),호성투어(02-319-2511) 등이 루앙 프라방과 비엔티안,하롱베이를 여행하는 패키지상품을 판매한다.
6월 출발 기준 '루앙 프라방,방비엥,비엔티안,하롱베이 4박6일'은 64만9000원,'루앙 프라방 하롱베이 4박6일'은 54만9000원,'루앙 프라방 하롱베이 3박5일'은 49만9000원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