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이 활황을 보이는 가운데 유독 한국화 시장만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화랑가에서 동양화 전시회를 찾아보기 어렵고 청전 이상범을 비롯해 소정 변관식,의제 허백련,이당 김은호,심향 박승무 등 6대 한국화 작가들의 작품 가격도 1996~1998년에 비해 3분의 1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이들의 그림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미술계에서는 한국화 시장의 잠재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최근 미술시장의 열기가 한국화로 옮겨 붙을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태=갤러리 현대,가나아트 갤러리,선화랑,국제 갤러리 등 대형 화랑들은 한국화의 거래 부진을 이유로 전시회를 꺼리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초까지 화랑이 기획한 한국화 전시는 노화랑의 '한국화 12명 대가'전을 비롯해 동산방의 '전통회화 명문가 3인전',윤갤러리의 송영방전,우림화랑의 운보 김기창 개인전 등 10여건에 불과하며 판매 실적 역시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이상범 변관식 허백련 노수현 김은호 김기창 장우성 서세옥 박노수 민경갑 이영찬 등이 참여한 노화랑의 '한국화 12명 대가'전에도 관람객만 북적일 뿐 컬렉터들의 '입질'이 거의 없었고,지난 3월 우림화랑의 김기창 개인전 역시 출품작 30여점 가운데 소품 3~4점 판매에 그쳤다.

작품을 찾는 사람이 없다보니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한국화 인기 작가 이상범의 경우 1996~1998년 점당 1억2000만원(40호 전지·100×72.7cm)이던 작품이 최근 시중에서 5000만~6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변관식 작품도 30% 이상 떨어진 5000만원 선,허백련 작품은 50% 이상 하락한 2000만원 선.김은호 작품 또한 2000만원에 나와 있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다.

노수현 박승무 장우성 김용진 김응원 오세창 등의 작품값도 약세다.

◆원인=한국화 시장의 매기가 이같이 위축된 것은 1970년대 '반짝' 호황 이후 20~30년간 '위작 논란'에 휩싸이면서 컬렉터들이 구입을 꺼리기 때문이다.

아파트 문화가 급속도로 번지면서 현대식 건축물에는 한국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진 것도 침체의 한 요인이다.

특히 농경사회의 철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어서 첨단 정보기술 시대의 요구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반응도 없지 않다.

◆바닥논쟁=한국화 시장에 대해 '바닥 탈출론'과 '장기 침체론'으로 엇갈린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지난 30여년간 서양화와 중국 미술에 밀려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위축된 한국화 시장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바닥세를 유지하고 있어 투자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임명석 우림화랑 대표도 김병종 사석원 이왈종 등 '퓨전 한국화'의 대표적인 '블루칩 작가'들의 약진을 예로 들면서 "시대적 요구에 따라 화풍과 화법을 바꾸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실장은 "동양화에 대한 고질적인 위작 논란을 잠재우는 시스템이 없는 한 '한국화의 봄'은 힘들다"며 "우리 그림에 대한 진위를 철저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감정시스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