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시대 지나 3D인쇄도 대중화
서울 시청앞 광장 근처 한 건물에는 영화 '황진이'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다.
포스터는 엄청나게 커 15층 건물의 반 이상을 가린다.
시청 앞을 지나는 시민들은 누구나 황진이를 볼 수 있어 홍보 효과는 기대이상으로 높다.
이 같은 대형 포스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의 손으로 정밀하게 포스터를 그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흔히 알고 있는 옵셋 인쇄소에서 실사 출력된 것도 아니다.
대형 포스터가 프린터에서 출력된 것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프린터의 세상으로 출발해보자.
◆프린터가 못하는 것은 없다
프린터는 이제 글이나 사진을 종이에 인쇄하는 기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디지털 프린팅 기술의 진화로 인해 프린터는 더 이상 종이에 무엇을 찍어내는 기기에 머물지 않는다.
천에 인쇄돼 건물 외벽에 걸리는 대형 포스터는 물론이고 출입문,테이블과 같이 딱딱한 표면,비닐까지 프린터는 재료로 쓴다.
'설마 유리에도 프린팅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유리 프린팅도 가능하다.
재료에 제한이 없을 만큼 무궁무진해졌다.
프린팅 기술은 재료의 제약만 넘어선 것이 아니다.
책 크기의 소형 프린터의 등장은 들고 다니면서 프린팅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프린팅이 가능한 유비쿼터스 프린터 시대인 셈이다.
프린터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어쩐 재료로든 못 뽑을 게 없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닌 듯하다.
한국HP에서 이미징 프린팅 사업을 총괄하는 조태원 부사장은 "인쇄 복사 프린트 인화 등의 개념이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구분 자체가 모호해지고 있다"며 "색깔을 입히거나 자신을 표현하는 모든 것을 프린터로 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소파천,벽지,커튼에 심지어 미술작품,옷까지
소파천에 그림을 새기고 커튼에 무늬를 넣는 것도 예전처럼 물감칠을 하거나 화학 공정을 따로 거칠 필요가 없다.
그냥 천그대로 프린터에 집어 넣으면 된다.
천에다 물감을 입히기 위해 색깔을 맞추고 물에 담가 두었다가 시간을 체크해 꺼내는 등 번잡하고 실패 확률이 높았던 과거의 방식이 프린터의 진화로 너무나 쉽게 변했다.
굳이 전문적인 디자인 프린터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쿠션이나 손수건 티셔츠 등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천에 프린터를 사용할 수 있다.
대형 옥외광고가 늘어나면서 프린터는 더욱 각광받고 있다.
버스 외벽을 장식한 어느 소주 회사의 광고물,지하철 광고물,백화점 외벽에 걸려 있는 대형 세일 포스터 등이 모두 디지털 프린팅 기술과 함께 발전한 대형 포맷 프린터로 출력됐다.
과거 작은 사진이나 그림을 하나하나 찍어내 이를 붙였던 방식에서 이제는 프린터를 통해 한번에 출력하는 것이다.
대형 광고물을 프린터로 뽑게 되면서 생긴 장점은 여러가지다.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훨씬 섬세한 표현이 가능해졌다.
과거엔 엄두도 못냈던 대형 포스터가 출현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도,건축설계도면,자동차 설계도 등도 프린터에서 예외가 아니다.
섬세하고 정밀한 표현이 요구되는 이 같은 출력물은 정확해야 한다.
하지만 건축물이나 자동차의 설계도면이 복사로 인해 부정확하게 출력된다면 자칫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프린팅은 이러한 프린팅 상의 오류를 없애고 세밀한 선 하나까지 정확하게 표현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이러한 디지털 프린팅 기술이 설치미술과 회화,사진,판화 등 순수미술의 다양한 장르에서도 이용되고 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개념에 맞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디지털 프린팅을 채택하고 자신의 작품을 프린터로 출력,전시하기도 한다.
◆3D 프린팅 시대도 멀지 않았다
프린팅 기술은 2차원적인 평면에만 이뤄지던 한계도 벗어버렸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모형 비행기의 꼬리 날개 부분이 처참하게 부서져 버렸다고 하자.이렇게 되면 그냥 버리거나 새 것을 사야하는 상황이지만 앞으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바로 3D 프린팅 기술 때문이다.
망가진 부분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3D 파일로 다운로드를 받은 뒤 3D입체 프린터에 집어넣고 프린팅을 해서 붙이면 끝이다.
신속조형기술로 가능해진 이런 프린팅 기술은 쉽게 말해 2차원적인 평면의 파일을 층층이 쌓아올려 빠른 속도로 3차원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물론 플라스틱과 같은 재료는 미리 준비돼 있어야 한다.
제품을 주조하는 것 같은 이런 공정을 프린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이 기본적으로 잉크젯프린터의 잉크 분사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3D 프린터는 지금까지 제품 디자이너나 엔지니어,과학자들에게 국한돼 사용돼 왔다.
하지만 값이 싼 것은 2000만원,가장 비싼 것은 15억원대이기 때문에 일반인은 물론 개인 디자이너들까지도 3D 프린터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최근 코넬대학교의 호드 립슨(Hod Lipson) 박사와 그의 조교 이반 말론(Evan Malone)이 개발에 성공한 3D 프린터의 조립 가격은 약 240만원에 이른다.
아이디어랩이라는 회사는 이보다 훨씬 저렴한 사무실용 3D 프린터 '데스크톱 팩토리'를 출시할 예정이다.
일반 레이저프린터 크기인 '데스크톱 팩토리'는 플라스틱 파우더 등을 이용해 재료를 잘 자르고 맞춰 가면서 쌓아서 조형물을 완성한다.
아이디어랩은 초기 제품 가격을 5000∼7000달러로 예상하고 있지만 1000달러 이하의 제품도 그리 먼 일이 아니라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 가정용 레이저 프린터도 비싼 것은 100만원을 호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비싸지 않다는 평이다.
2005년 자신이 개발한 3D 프린터를 선보인 바 있는 성공한 영국 바스대학교의 애드리안 바우어(Adrian Bowyer) 박사는 "앞으로 사람들은 상점에 가는 대신 온라인으로 제품을 다운로드해 집에서 직접 제품을 만들어 쓰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