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에 나오는 장인과 데릴사위 간의 갈등과 익살이 예사롭지 않다. 이제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올려달라는 사위의 말에 장인은 "이 자식아,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하고 만다. 자라야 한다는 것은 장차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를 말한다. "여기 와서 돈 한푼 안받고 일하기를 삼년하고 꼬박 일곱달 동안 그래도 못 자랐다니 이 키는 언제나 자라는지…."

자탄을 하는 데릴사위인 주인공의 무능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얹혀 사는 처가살이의 설움이 짙게 배어있기도 하다. 오죽하면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한다"고 했을까. 하지만 이러한 데릴사위 혼인은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것으로 대개 가난한 사람에게 딸을 주어 그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게 보통이었다. 양자를 할 때는 같은 성씨 중에서 따로 받아 들였다.

'예비사위'라는 뜻의 예서(豫壻)는 경우가 달랐다. 가난한 집의 남자 아이를 여자 집에서 키운 뒤 결혼시키는 것이다. '민며느리'와는 정반대다. 부계혈연만을 고집하지 않았던 조선시대 이전에는 '서양자(壻養子)'라 해서 딸만 있는 집안에서 사위를 양자로 맞기도 했다.

결혼세태도 돌고 도는 모양이다. '처가살이'라며 비아냥을 받았던 데릴사위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 결혼정보업체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혼 남성 절반 정도가 처가살이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이유는 딸도 자식이어서 부모를 모시는 건 당연하다는 대답이었다.

이제는 데릴사위를 아예 공개적으로 찾는 일까지 벌어졌다. 1000억원이 넘는 재력가라고 주장하는 아버지가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혼기를 놓친 딸의 배우자를 찾아주려 직접 나선 것이다. 아버지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엄청난 재력을 내세워 사위를 공모한다는 비판은 면키 어려울 것 같다.

핵가족시대의 처가살이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양가의 형편을 살펴 선택할 사안일 뿐이다. 혹시 영악해진 남자들이 자신의 경제적인 무능함을 처가살이로 해결하려 덤비지는 않는지,이는 꼭 경계할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