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斗錫 < 손해보험협회 이사 >

얼마 전 한·일 보험학술대회 참석차 일본에 갔었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관계자들과 친선으로 골프 라운딩을 할 기회가 있었다.

땀을 흘린 뒤라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나 일행들과 함께 마시며 동석했던 일본 사람들에게도 한잔 권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차 운전 때문에 술을 마시면 절대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으면 맥주 한잔 정도는 별것 아니라며 가볍게 마실 법도 한데,그들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음주운전을 했다가는 그 대가로 받게 될 처벌이 너무나 엄해서 마실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9년 일본에서 만취운전자가 모는 트럭이 승용차를 추돌해 어린이 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많은 시민단체들은 '음주운전과 같이 악질적이고 고의적인 범죄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형법에 '음주운전 치사상죄' 신설을 촉구하는 운동을 펼쳤고,2001년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이 법은 음주운전으로 타인(他人)을 다치게 한 경우에는 벌금형이 아닌 10년 이하의 징역,사망케 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렇게 일본은 음주운전자를 고의적 범죄자로 간주해 엄벌에 처하는 법조문을 신설하고,단속 기준도 혈중알코올 농도 0.05%에서 0.03%로 낮추는 등 강력한 음주운전 예방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위험운전 치사상죄가 도입된 이듬해에는 음주운전 사고가 전년보다 16.3%나 줄었다.

2000년 340명에 이르던 음주운전 사망자는 2004년 144명으로 줄어 법 개정 3년 만에 무려 57.6%나 감소시키는 성과를 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경찰 통계에 따르면 최근 전체 교통사고는 줄어들고 있으나,음주운전 사고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음주운전 사고건수는 2004년 2만5150건에서 2005년 2만6460건,사망자수는 875명에서 910명,부상자수는 4만4522명에서 4만8153명으로 각각 늘었다.

정부와 경찰 언론 시민단체 등 각계의 노력으로 교통사고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음주운전 사고만 늘고 있으니,이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자동차가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 술은 만병의 근원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음주운전으로 연결될 경우 엄청난 사회적 폐해로까지 확대된다.

음주운전자 본인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술을 마셨겠지만,운전대를 잡는 순간 자동차는 총기보다 더 무서운 흉기로 변하여 아무런 잘못도 없는 선량한 사람을 한순간에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행은 피해자 본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미쳐 가정의 파탄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음주운전 사고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도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다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현행 법은 음주운전 사고를 낸 가해자에게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 실형을 받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부분 돈(벌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설사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더라도 돈으로 해결하면 큰 불편없이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음주운전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낼 경우 반드시 감옥에 가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처럼 음주운전 사고를 낸 사람에게 벌금 대신 징역을 살게 하는 제도가 도입된다면,감히 음주운전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때마침 우리나라에서도 뜻있는 국회의원들이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음주운전 피해자들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감안하면 때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바람직한 법안이라고 본다.

우리의 선량한 이웃들이 음주운전자가 비틀비틀 모는 차량에 소중한 생명과 가정의 행복을 송두리째 잃는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금 국회에 상정된 음주운전자 처벌강화 법안이 통과되기를 바란다.

무서운 음주운전 사고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일,이제 국회가 앞장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