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서방 7개국 정조준 '쓴소리'…"세계경제 G7만의 리그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일 서방선진 7개국(G7) 중심으로 짜여진 국제금융 및 무역기구를 공격했다. 러시아를 포함해 떠오르는 신흥국가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재편돼야 한다는 것. 푸틴의 공세는 러시아의 옛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서 나왔다. 도이체방크,BP,로열더치셸,네슬레,셰브론,코카콜라 등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기업 대표 6000명이 참석한 자리였다. 독설에 가까운 푸틴의 요구는 신흥국가의 공감을 사고 있어 앞으로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G7부터 바꾸자"

"현존하는 국제금융 및 무역기구는 낡고 비민주적이며 다루기 힘들 정도로 덩치만 크다." 푸틴의 이 같은 공세는 G7을 정조준했다. 푸틴은 "50년 전에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가 G7 국가에서 나왔지만 이제는 전 세계 GDP의 60%가 G7 이외의 국가에서 창출되고 있다"며 더 이상 G7이 국제금융 및 무역 질서를 좌지우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국가별 GDP 순위를 따져봐도 G7 국가들을 더 이상 '선진 7개국'이라고 뭉뚱그려 특별 대우하긴 힘든 상황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4위권으로 뛰어올랐고 브라질(10위) 러시아(11위) 인도(13위) 등도 무서운 속도로 추격 중이다.

이들 신흥국이 G7 국가에 비해 몇 배나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G7의 끄트머리에 달려 있는 이탈리아와 캐나다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푸틴 대통령은 국제결제통화에 대해서도 불만을 뿜어냈다.

그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기껏해야 달러와 유로 두 통화만 사용되는 것은 불충분하다"며 "러시아 루블화를 포함한 다른 나라 통화가 세계 경제교역에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IMF,IBRD 등도 도마에

푸틴의 주장은 러시아를 포함한 신흥국가들이 세계 경제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언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불만을 깔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우 회원국은 180개가 넘지만 이 가운데 의사결정권이 있는 이사국은 24개국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 등 8개국은 자국을 대표하는 단독 이사를 갖고 있는 반면 나머지 회원국들은 몇 나라씩 그룹을 이뤄 이사를 선출한다.

미국만 거부권을 갖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가 간 빈부격차 해소에 주력하는 세계은행(IBRD)의 의사결정 과정에 협상에 참여해야 할 가난한 나라들이 배제되고 있는 것도 고쳐야 할 부분이다.

세계 주요 기구들의 수장을 결정하는 과정도 푸틴의 지적처럼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IMF,IBRD,세계무역기구(WTO) 등 대부분의 국제금융 및 무역기구의 수장 자리는 미국과 유럽이 나눠먹는다.

폴 울포위츠 전 IBRD 총재의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신임 총재에 다시 로버트 졸릭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임명된 것은 IBRD 총재 자리가 미국 몫이기 때문이다.

푸틴의 당당한 요구는 러시아 경제의 탄탄한 성장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들어 6~7%에 이르는 고성장을 지속,2000년 1778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민소득을 작년엔 7000달러 언저리까지 끌어올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한 글로벌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은 러시아와 서방 국가 간 관계가 악화하고 있음에도 러시아에 대한 투자를 계속할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