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택 회장은 공채를 통해 포스코에 입사해 회장까지 오른 최초의 인물이다.

그 때문에 조직 내 신망과 기대가 크다.

한국 최대의 파워 엘리트 산실인 KS(경기고,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인 이 회장은 대학을 졸업한 뒤 당초 유학을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주임교수였던 윤동석 전 포스코 부사장의 권유로 1969년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이후 올해까지 38년간 오로지 포스코에서만 한우물을 판 전형적인 '포스코맨'이다.

이 회장은 금속공학과 출신답게 '쇠박사'로 통한다.

하지만 기획과 판매 파트에서 근무한 경력이 더 많아 기술지식과 경영능력을 겸비한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수출부,경영정책부,신사업본부 등에 근무할 때는 장기 마스터 플랜을 내놓아 사내에서는 '비전 크리에이터(vision creator)'로 통했다.

특히 박태준 명예회장은 1980년대부터 그를 미래의 CEO로 점찍었다.

이런 이유로 초년병 시절부터 제철소 등 현장뿐 아니라 기획파트 등을 두루 거치며 CEO로 훈련을 받았다.

이 회장은 해외 투자설명회(IR)에 참가,영어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할 정도로 영어에 능통한 데다 매너가 좋아 '국제신사'로도 통한다.

성격은 소탈하고 선이 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장 자리까지 오르면서 승진의 기쁨이 가장 컸을 때가 과장으로 승진했을 때라고 말할 정도로 샐러리맨의 소탈한 DNA를 갖고 있다.

부하직원의 결함을 잘 덮어주는 온후함도 갖추고 있어 직원들 가운데 팬이 많다.

지장(智將)뿐 아니라 덕장(德將)의 면모까지 갖추고 있는 셈이다.

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강철을 녹이는 스마일맨'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이 회장은 부인 이정란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뒀다.

큰딸이 결혼할 때 직원이 몰랐을 정도로 공사 구분이 확실하다.

술은 즐기는 편이다.

포항제철소장 시절에는 소주 1~2병도 쉽게 비웠지만 이때 평생 마셔야 할 술을 거의 다 마셔서인지 최근에는 와인 반 병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골프가 수준급이고 아마 3단의 바둑실력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