兪炳圭 < 현대경제연구원 상무 >

국내 경제의 과잉 유동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 통화 증가율이 장기적인 평균 추세선을 크게 웃돌고 있고,경제성장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통화량이 늘어나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유동성이 빠르게 증가한 배경은 매우 복합적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기 활성화를 위해 추진된 저금리 정책,수출 호조에 의한 경상수지 흑자 누적과 금융 시장 개방에 의한 해외투자 자금의 지속적인 유입,국내 기업들의 경영 여건 악화에 대응한 현금 보유 선호 경향,여기에 균형 발전 차원의 지역개발 사업에서 유발된 막대한 토지 보상금 등이 국내 유동성을 급속히 팽창시킨 주요인들이다.

통화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늘어나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져 결국 경제 활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과다하게 공급된 유동성을 축소하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일본 등이 지난해부터 기회만 되면 금리를 인상하려 하는 것은 각국 경제에 과잉 공급된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함이다.

한국도 현재 경제원론 상으로는 국내 금리의 인상 요인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통화량의 조절 기준이 되는 국내 적정 금리가 대략적으로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을 더한 7%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국내 시중 금리는 이보다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은은 이번 금통위에서도 정책 금리를 동결했다.

한은의 고민은 한국 경제가 경제원론이 일러주는 정책 효과를 액면 그대로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 봉착해 있는 데 있다.

넘쳐나는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당장 대부분 변동 금리 조건인 가계 대출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높이게 된다.

투자 심리도 그만큼 약화돼 요즘에 그나마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내수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는 셈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부동산 보유에 대한 강력한 중과세 정책과 주택 공급 증가에 더해 급속한 통화 환수까지 더해질 경우에 하향세를 보이는 부동산 시세가 급락해 가계발(發) 경제위기 가능성을 높여준디는 점이다.

금리 인상으로 국내 돈값이 올라가면 원화 환율에 대한 절상 압력도 가중돼 수출 부진을 초래하고 채산성 악화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그야말로 정책 당국은 경제 안정과 경기 활성화,그리고 수출 증대라는 3중고(三重苦) 앞에 어떤 선택도 어려운 트릴레마(trilemma) 상태에 봉착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유동성을 적정 수준에서 조절하면서 경기 활성화 목표도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화 정책의 신뢰성을 높여 나가면서 금융과 실물 경제 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통화 정책이 경제 외적(外的)인 정치 논리보다는 경제의 기초 조건에 기초한 적정 금리와 환율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됨으로써 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는 가계의 과도한 대출을 억제하고 안정적으로 자산과 부채 관리를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다음으로는 풍부한 유동성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 실물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기여하도록 적극 유도해야 한다.

차제에 국내 경제의 성장을 위해 시급히 요청되는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자원 개발,신(新)성장동력 산업 육성 등에 국내 자금이 원활히 유입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들을 과감히 풀어야 한다.

금융회사의 중소기업 컨설팅 능력을 배양,금융회사와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관계 금융'을 활성화해 가능성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도 국내 시중 자금이 적극 활용돼야 한다.

국내 시장의 개방으로 갈수록 불어나는 해외 투자 자금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내 자금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길도 열어주는 '양방향 개방' 정책도 효과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금은 기업이나 개인 투자자들도 정부가 금융의 안정성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는 과도한 기대를 낮춰가야 할 때다.

당장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과잉 유동성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금리 인상 정책이 확산될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한 금융 포트폴리오의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