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暎 浩 <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2·13합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인 2500만달러의 처리 문제가 해결될 조짐을 보임으로써 북한이 약속한 대로 초기 이행 조치를 취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BDA 문제는 '2·13 합의문'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미국은 북·미 베를린 양자 회담을 통해 비록 이 돈이 불법적 돈이지만 인도적·교육적 목적에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북한 측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 돈의 송금을 중계할 민간 은행들이 대외적 신인도를 우려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음으로써 이 문제 해결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최근 보도된 대로 미국 연방준비은행과 러시아 중앙은행을 통해 이 돈의 송금이 가능하게 될 경우 합의 이행 시한(4월14일)을 두달 가까이 넘기면서 협상 동력 상실에 대한 우려가 컸던 북핵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6자 회담을 통한 2·13 합의는 '선(先)핵폐기,후(後)관계정상화'를 제시한 '리비아 모델'과 달리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앞세운 북한의 주장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다.

그동안 북핵 문제는 송금 문제라는 북·미 간 '비공식 합의' 사항의 미해결이 6자 회담의 '공식적 합의' 사항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었다.

지금까지 북·미 간에 누적된 심각한 상호불신에 비춰볼 때 송금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의 기싸움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다.

북한은 BDA에서 2500만달러만 찾고 여타 세계 은행들과 정상적 거래를 하지 못할 경우 국가경제에 치명상을 입을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 해결에 집착하고 있다.

북한은 세계의 은행을 통한 신용거래가 막힐 경우 막대한 현찰 아니면 금덩어리를 들고 다녀야 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약속한 대로 송금 문제가 해결되면서 아쉬운 점은 북한이 2·13 합의 이후 미국을 신뢰하고 좀더 전향적으로 나왔다면 북핵문제 해결은 더욱 빠른 진전을 보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베를린 북·미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의 결재 하에 BDA 문제를 해결해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송금 문제 해결이 조금 지연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2·13 합의에 따른 초기 이행 조치를 먼저 취했다면 북한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서 있을 것이다.

나아가 북한의 선행 조치는 오히려 국제사회로부터 북한에 대한 신인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이번 BDA 문제 해결처럼 미국 주도 하의 일회성 문제 처리에 의해 북한의 대외적 신인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북한은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협상 방식은 단계마다 상대 국가의 의도를 타진하면서 반대 급부를 줄지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처음부터 정해진 불변의 협상 루트는 없다.

합의 이행 과정에서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언제든지 강경파의 목소리가 득세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미국은 2·13 합의 도출 과정에서 외교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6자회담 참가국들의 희망을 반영해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전례없는 정책적 양보를 했다.

미국이 대북 협상에서 이렇게 적극성을 보인 것은 북한에 의한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이후 처음일 것이다.

송금 문제 해결 이후 2·13 합의에 따라 북한은 영변 핵 시설을 폐쇄·봉인하고,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수용하는 초기 이행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

그 대가로 북한은 중유 5만t을 지원받을 것이다.

이런 1단계 조치가 끝나고 나면 북한은 모든 핵물질를 신고하고 핵 시설을 완전히 불능화시키는 2단계 조치를 취해야 한다.

BDA 문제 해결 이후 북한이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2·13 합의는 완전히 동력을 잃고 북핵 문제는 또 다른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최근 두 달간 교착 상태는 북한이 '행동 대 행동'이라는 원칙만을 고집하지 말고 더욱 유연한 협상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핵 실험 이후 대북한 유엔제재 결의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북한이 북핵 폐기 의지를 국제사회에 확고하게 보여줄 때 북핵 위기 재발은 방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