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로 장식된 15~20층 높이의 건물,사람들이 앉아 여유를 즐기는 벤치와 나무들로 둘러싸인 넓은 공원…. 얼핏 보기에 고품격 사무실이 들어선 오피스빌딩처럼 보이는 것들이 모두 아파트형 공장들이다.

일부 건물에는 로비 중앙부터 꼭대기층까지 중정(中井)을 만들어 채광과 환기성이 최고급 인텔리전트 빌딩 수준이다.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과 문구점 은행 병원 등 각종 편의시설들도 즐비하다.

거무칙칙한 거리 분위기와 '공돌이' '공순이'의 부정적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던 구로공단이 이렇게까지 바뀌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삼성경제연구소는 13일 '구로공단 부활의 의미' 보고서에서 구로디지털단지가 강남구의 테헤란밸리를 앞지른 벤처기업단지로 자리잡게 된 원인을 '규제 완화와 낮은 비용,양호한 근무 환경과 입지 우위 등의 네트워크 효과 때문'으로 분석했다.

구로디지털단지는 제조업 생산기지에서 벤처기업 중심지로 탈바꿈하면서 입주 기업 수가 1998년 483개에서 올해 4월 6711개로 14배 증가했고,취업자 수는 같은 기간 2만5000명에서 9만2000명으로 3.7배 늘어났다.

순수 벤처기업수로는 구로가 859개로 강남구(828개)를 앞질렀다.

◆규제 완화와 낮은 비용


삼성연은 정부의 규제 완화와 낮은 가격으로 아파트형 공장을 대량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을 구로공단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1996년부터 시행된 '수도권 공장총량제'로 인해 서울에서는 공장을 마음대로 증축할 수 없었는데,정부가 아파트형 공장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민간업자들이 아파트형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한 뒤부터 값싼 공장이 대규모로 공급됐다는 것이다.

구로단지에는 현재 61개 아파트형 공장에 5992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2008년까지 13개의 아파트형 공장이 추가로 공급될 예정이다.

여기에다 서울시는 공공자금으로 분양대금의 70%까지 저리로 융자해주고,최초 입주자에 대해서는 취득·등록세 면제와 5년간 재산세 50% 경감,종합토지세 50% 경감 등의 세제 혜택을 줬다.

구로단지의 땅값이 강남 테헤란밸리의 10∼20% 수준에 불과한 데다 이 같은 혜택까지 더해지자 막강한 가격경쟁력이 생겼다.

구로단지는 전기료 등 공공요금을 산업용(50%)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관리비용도 강남권의 50% 수준에 그쳤다.

이에 따라 수도권 각지에 산재해있던 벤처기업들이 구로단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구로단지로 이전해온 벤처기업 중 40%가 강남권에서 왔고,서남부권 도심 강북권에서도 수많은 벤처기업이 이주했다.

구로단지 입주 업체의 11%는 서울 이외 지역에서 왔을 정도로 구로단지의 경쟁력이 높아졌다.

소프트웨어와 멀티미디어 디자인 콘텐츠 등 IT업체들이 대거 유입됐고 지식서비스 관련 기업도 많이 들어왔다.

◆입지·네트워크 효과도 우수

구로단지는 서울과 수도권의 우수한 인력과 기술 지식 자본 등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는 강점을 원래부터 갖고 있었다.

여기에다 비슷한 업종과 연관 업체들이 모여들면서 협력업체를 구하기가 매우 쉬워졌고 전문인력도 손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양질의 기술과 시장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기는 등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했다.

박용규 삼성연 수석연구원은 "구로단지는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해 형성한 도시형 기업생태계"라며 "구로단지의 성공 사례를 낙후된 공업지역의 도시 재생 모델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 재생형 첨단산업단지가 신규 개발보다 효과가 더 클 것으로 기대된다"며 "이 같은 단지를 더 많이 만들려면 수도권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하고 산업용지 공급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경남/이상은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