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 중에 '쪼록꾼'이라는 게 있었다.

매혈을 일삼는 사람을 지칭했는데,유리병 속에 피가 빨려 들어갈 때 나는 소리를 빗댄 것이었다.

한 달에 두어 번씩 상습적으로 매혈하는 사람은 '귀신'으로 통했다.

자기 몸속의 피를 팔아 생활고를 해결하고 고학을 하던 시절의 얘기다.

매혈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은 1981년부터였다.

혈액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매혈을 불법행위로 규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헌혈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데다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는 어느 부분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유교사상이 깊게 뿌리박혀 헌혈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도 이런 사상이 남아 있어서인지 장년층과 노년층의 헌혈 기피현상은 여전한 편이다.

흔히 헌혈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말하곤 한다.

마음과 정을 주는 '사랑의 실천'이라고도 하는데,혈액이야말로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환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니 다른 수식어들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도 싶다.

그런데 항상 피가 모자라 걱정이다.

헌혈 캠페인을 벌이고,정부는 관련 예산을 증액하고 있지만 헌혈자는 되레 줄어드는 추세다.

수백억원을 들여 확충한 전국의 '헌혈의 집'이 '빈혈'상태라는 소식도 들린다.

혈우병 치료제 등에 쓰이는 혈장은 수입으로 충당하는 형편이다.

혈액부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오늘 '세계 헌혈의 날'을 맞았다.

많은 지자체의 공무원들이 예년과는 달리 헌혈 대열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가 하면,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든 임직원들은 헌혈침대에 누워 '나누는 기쁨'을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혈액을 대체할 물질이 개발되기에는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혈액부족은 자발적인 헌혈 이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채울 수 없다는 얘기다.

후진국일수록 혈액기근은 심각한 지경인데,중국 광둥(廣東)성에서 돈을 받고 피를 파는 집단 '매혈촌'이 성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과거 우리의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모두를 슬프게 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