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우리 조상들도 감기(고뿔이라 했던가)에 걸려 고생을 했고 21세기에 사는 우리도 가끔 감기 몸살에 걸려 힘이 들고는 한다.

감기에 걸리면 먹을 수 있는 많은 약이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없애지는 못하고 있고 여전히 우리는 감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경제에도 감기 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경기변동이다.

어떤 경제가 추세적인 성장을 하더라도 호황과 불황은 꼭 번갈아가며 찾아온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여러 가지 처방이 제시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경기변동을 없애지는 못하고 있다.

경기는 고점을 찍은 후 수축기 내지 불황 국면에 접어들면서 내려가다 얼마 후 저점을 찍는다.

이제 다시 확장기 곧 호황 국면에 접어들면서 올라간다.

그런데 호황 국면이나 불황 국면이나 불청객이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하 인플레)과 실업이다.

호황 국면이 지속되면 물가가 오르기 시작한다.

인플레가 발생하는 것이다.

마치 오랫동안 달리면 체온이 올라가고 땀이 나듯 호황 국면이 지속되면 인플레는 어김없이 우리 곁에 다가온다.

적당한 수준의 인플레야 그렇다 치더라도 과도하게 물가가 상승하면 고통은 상당하다.

특히 부동산 등 실물자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 격차가 벌어지고 부채를 일으킨 사람은 부채의 실질가치가 하락하면서 재미를 보고 예금을 한 사람은 예금의 실질가치 하락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게다가 경제주체들이 인플레 회피 수단을 찾느라 골몰하면서 경제에 주름살이 드리운다.

그러면 실업은 어떤가.

실업은 체온이 떨어질 때 느끼는 고통과 유사하다.

불황 국면이 이어지면서 성장률이 낮아지면 기업들은 몸을 사리면서 고용을 줄이기 시작한다.

결국 실업률이 상승하고 국민경제의 고통이 증가한다.

호황이 지속되면 인플레가 걱정이고,불황이 지속되면 실업이 걱정이다.

그렇다면 인플레와 실업률이 모두 제로인 상태를 달성할 수는 없을까.

오래 전 필립스라는 경제학자는 분석을 통해 실업률과 인플레율 간에 역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나타내는 곡선을 필립스 곡선이라 불렀다.

인플레를 피하려면 실업률이 올라가서 문제이고 거꾸로 실업을 피하려면 인플레율이 올라간다는 이 주장은 단순성과 명쾌함으로 인해 한동안 많은 정책에 영향을 주었다.

토끼 두 마리를 다 잡으려면 안 되니 한 마리라도 잘 잡으라는 교훈을 준 것이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이 집권하면 실업률보다는 인플레를 잡는 데 신경을 쓰고 반대로 민주당이 집권하면 인플레가 좀 높아져도 실업률을 낮추는 데 더 신경을 쓴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이 곡선은 각 당의 이념적·정책적 특징을 나타내는 것에까지 이용이 되었다.

미국에서 신경제 붐이 일어났을 때 미국 의회에서는 이제 필립스 곡선은 사라졌다는 발언이 나온 적도 있었다.

(이 얘기는 인플레 없는 지속적 성장 곧 인플레율과 실업률을 거의 영으로 낮출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였는데 우리 국회에서는 언제쯤 이런 고상한 논쟁을 기대할 수 있을지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많은 후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필립스 곡선은 장기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은 아니고 단기적으로만 존재한다는 쪽으로 결과가 어느 정도 모아지기 시작했다.

장기든 단기든 필립스 곡선의 존재는 결국 인플레율이 영인 지속적 경제성장이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처럼 실업률과 인플레율이 국민경제에 주는 고통에 착안해 경제학자들은 고통지수를 만들었다.

주로 인플레율,실업률과 국민소득 증가율 등이 쓰이는데 기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경제학자 아서 오컨이 개발한 고통지수는 인플레율과 실업률을 더한 후 성장률을 빼서 만든다.

성장률은 고통보다는 쾌감을 유발하는 숫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LG경제연구원은 실업률과 인플레율의 단순 합계를 사용해 고통지수를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이 연구원은 우리나라 각 지역별로 지수 비교 결과를 따로 계산해 발표하고 있다.

이 연구원이 내놓은 '2006년 생활경제고통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국내 전체의 생활물가 상승률과 체감 실업률은 각각 3.1%와 6.9%로 이를 합한 생활경제고통지수는 10.0이었다.

또한 각 지역별 비교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매년 계속 일등을 달리던 서울을 제치고 대전광역시가 고통지수 11.1로 일등을 기록한 것이다.

서울은 11로 2위,경기가 10.5로 3위를 기록했다.

가장 낮은 곳은 경북으로 8.4였다.

대전이 왜 1위를 차지했는가를 보면 바로 실업률이 원인이었다.

2002년까지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던 대전의 체감 실업률은 2003년부터 꾸준히 상승했다.

작년의 경우 체감 실업률 전국 평균이 0.2%포인트 하락했는데도 대전은 오히려 0.2%포인트 상승해 전국에서 가장 높은 8%를 기록했고 결국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년 연속 전국 최고였던 서울을 제쳤다.

행정복합도시의 효력이 떨어진 것인지 결코 달갑지 않은 1등을 기록한 것이다.

앞으로도 호황과 불황은 반복하고 실업률과 인플레율이라는 두 개의 경제적 고통은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 불황 국면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고 호황 국면의 길이는 짧아지고 있다.

경제가 힘을 잃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인플레보다는 실업이 더 큰 고통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현재 시점의 청년실업률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불황 국면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인력들은 힘든 교육을 마쳤으면서도 일자리가 없는 실업의 고통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스스로 '저주받은 세대'니 하는 원색적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정말 아프다.

호황 국면이 길어질 수 있도록 신경 좀 많이 써야 한다.

/서울시립대 교수 chyun@uos.ac.kr